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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民心)을 담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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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7-18 13:59 조회6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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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겠다, 갈아보자!”

이 구호는 1956515일 치러진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때 등장한, 당시 야당 민주당의 선거 구호다. 그때 소승은 열다섯 살로, 일찍이 고향을 떠나 서울 친척 집에서 기숙하며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당시 선거 풍경은 6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선연하다.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거리에는 노숙인과 무직자와 전쟁고아들이 넘쳐났고,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청계천은 물론, 사대문 밖을 조금만 벗어나도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과 발이 푹푹 빠지는 비포장길이 허다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부패는 갈수록 심해져 시중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선거가 제3대 정·부통령 선거였다. 국회 사사오입, 이승만 대통령의 불출마 번복, 선거 기간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 우여곡절 속에서 진행되다 보니 선거는 유례없이 혼탁했다. 그때 야당이 내건 선거 구호가 바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였다. 그에 맞서 여당인 자유당은 갈아봤자 더 못산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얼마나 가난했으면 그런 선거 슬로건이 나왔을까 싶어 마음 한편이 쓰리다.

 

지난 7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시켰다. 세계 서른두 번째 선진국으로, 1964UNCTAD가 설립된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최초라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 헐벗은 국민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외치던 65년 전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이제 먹을 게 없어 굶고, 입을 게 없어 벌벌 떠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거 유세장에서 걸핏하면 벌어지던 유혈사태라든가 공공연히 행해지던 투·개표 부정도 사라진 지 오래다. 더는 고무신 한 켤레와 투표지 한 장을 맞바꾸는 일도 없다. 우리 국민이 그 모진 시련을 딛고 일군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이다. 그리고 그 결실의 상징이 이번 선진국 그룹 승격이다.

 

하지만, 이런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많다. ‘급변(急變)’이라고까지 말해도 될 정도의 초고속성장을 이뤄내다 보니 무엇보다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깊다. 여기에 분단상황에서 비롯한 이념 갈등, 지역갈등까지 더해져 어디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지금까지는 먹고 사는문제와 형식적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갈등은 꾹꾹 눌러둔 채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각종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는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살률은 가장 높고 출생률은 가장 낮다. 한 마디로 미래 희망이 없다는 얘기다. 최근 SNS를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성난 목소리들이 이를 증명한다.

 

단언하면, 모두 정치력 부재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민심도 읽지 못한 채 모든 사안을 정치 공학으로만 받아들이고 설계하기 때문이다. 아니, 민심을 담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탓이다. 여야가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어떤 작고한 재벌기업인은 한국의 정치를 삼류라고 말했을까.

 

앞으로 우리가 대면할 상황은 더 엄중하다.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19,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다시 폭발하는 4차 대유행, 포스트 코로나와 4차산업, 기후 위기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더욱이 이는 반드시 누군가의 고통이 뒤따르는 일이다. 국민적 공감과 유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갈수록 복잡하게 얽히는 이해관계를 지혜롭게 풀어내는 리더십 말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세계가 인정했고,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친목 골프에서 실력이 낮은 사람에게 주는 핸디 어드밴티지혜택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짜 실력으로 맞붙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내년에 치러질 두 번의 큰 선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담아내는 지혜로운 정치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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