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연구논문> 연구논문

연구논문

청와대가 세종시로 가는 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8-19 10:36 조회1,109회 댓글0건

본문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가장 화려한 한옥 구조인 팔작지붕 위에 15만장의 파란 도자기 기왓장을 얹은 본관은 최고 권력을 상징한다. 청와대다. 본관, 여민관 등이 터 잡은 청와대는 예로부터 명당으로 꼽혔다. 지리도참설이 유행한 고려시대엔 전국 여러 곳에 왕이 기거할 별궁을 세웠는 데, 1067년 양주(지금의 서울)에 남경을 설치하고 현재 청와대 자리에도 별궁을 세웠다고 한다. 한양을 새 도읍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창건한 조선은 신무문 뒤쪽인 현재 청와대 일대를 궁궐 후원으로 삼았다. 세종은 이곳에 직접 농사를 짓는 농지를 두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청와대 신축 공사 때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옛 화강암 표지석이 발견됐다. 이 표지석은 현재 청와대 경내에 서있다. 그러나 많은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 중이나 퇴임 뒤 각종 ‘불행’을 겪으면서 웬만치 강한 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청와대의 센 땅 기운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일본이 경복궁에 총독부를 짓기 시작하면서 청와대 자리엔 총독 관저를 세웠다. 1945년 해방 뒤 미군정 장관 관저로 사용되다 48년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하면서 ‘경무대’로 불렀다. 4·19 혁명으로 이 대통령이 하야하자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앤다며 청와대로 이름을 바꿨다.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등을 북악산이 막아줘 천혜의 요새로 꼽힌다고 한다. 그러나 비서동과 멀찌감치 떨어진 본관 2층에 마련된 대통령 집무실은 구조적으로 대통령을 민심과 멀어지게 한다는 비판의 표적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본관의 높은 층고 공간을 활용해 별도의 2층을 만든 뒤 이곳에 비서진의 업무 공간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으나 본관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반론 등에 따라 여민관에 별도의 집무실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집무실 이전을 공약했지만 협소한 공간, 경호 문제 등으로 백지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 완성론’을 내걸면서 청와대 이전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행정수도특별법은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온전히 옮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습 헌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좌절됐다. 정부는 헌재 결정에 따라 2006년 행정수도특별법을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으로 변경 추진하면서 세종시에 청와대 제2집무실 자리를 미리 마련해 뒀다. 청와대는 언제쯤 세종시로 옮겨갈 수 있을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