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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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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9-07-25 15:10 조회1,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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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11일부터 15일까지 일본 삿포로 조동종 중앙사에서 열린 제39회 한일 불교문화교류 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조계종 원행 총무원장 등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스님 92명과 일본의 후지타 류조(藤田隆乘) 등 일본을 대표하는 스님 95명 등 양국의 스님 187명이 모여 두 나라의 환경문제와 불교문화에 관해 토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참석자들은 대회에서 3국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인류 행복에 기여하자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고 얼마 후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가 터졌습니다. 불과 한 달 전에 양국 스님들이 모여 인류화합과 공생을 기원했던 터라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도발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문에 때 아닌 친일-반일논쟁이 벌어지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까지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아베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라는 백가쟁명 식 추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을 얻으려는 선거용이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항의다, 아베 개인의 호전적인 성격 탓이다, 군국주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떨어진 지지도를 올리려는 극단적인 포퓰리즘이다, G-20에서 보듯이 새로운 동북아 질서에서 소외된 것에 대한 반발이다,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번 아베의 수출 규제는 굉장히 뜬금없는 행동입니다. 국제 신의를 저버리는 도발입니다. 일본은 세계 3대 경제대국입니다. 선진국으로서 그에 걸맞은 위상과 체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베 혼자만의 일본이 아닙니다. 수출 규제로 일본이 대단한 이익을 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방 도시들은 한국 관광객이 끊기고, 기업들도 판로가 막혀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지난 51일 일본의 천황 나루히토(德仁)가 즉위하면서 레이와(令和)’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의 시대를 열자마자 이 같은 경제보복과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것을 보니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모습입니다. 일본을 일러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로 그 말이 더 실감납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차분함과 냉정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지식보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부, 언론, 정치권도 너무 과민한 반응 보일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에 크게 의존해온 기초과학, 핵심 소재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 고민 없이 수입해서 쓸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과 연구소의 노력을 외면한 대기업들도 자신을 뒤돌아볼 때입니다. 이를 통해 더 단단한 과학과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가 우리 독도 부근 영공을 침범, 종전 이후 최초로 항공기 사이에 실탄을 발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동북아 긴장관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이고,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라는 게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유상하(東西南北 四維上下) 모든 것이 실은 한 티끌에 불과하지만, 그 한 티끌 속에 우주 전체를 포함하는 진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러한 미진(微塵)의 세계는 더 크고 작고, 더 잘살고 못살고, 더 앞서가고, 뒤처지고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이웃까지 포용하는 섭수(攝受)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산속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나, 들녘 개울에서 흐르는 물이나, 해우소와 오물통에서 흐르는 물이나, 모두가 바다로 통합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모두가 짠맛으로 변하는 이 도리가 바로 해인(海印)’입니다.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는 아베가 유념해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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