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된 ‘킹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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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8-01-14 09:12 조회3,299회 댓글0건본문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드록신(神)’이란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의 별명이 드록신이다.
코트디부아르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2005년 10월,
드로그바는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단 일주일 만이라도 전쟁을 멈춰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수년째 내전 중이던 정부군과 반군은
그의 간청을 받아들여 무기를 내려놨다.
2년 후인 2007년 양측이 평화협정을 맺으며 내전은 종식됐다.
스포츠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드로그바가 2000년대의 전설이라면
1990년대에는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가 있었다.
웨아는 1988년 AS모나코 감독이던
아르센 벵거의 눈에 띄어 유럽에 진출했다.
AC밀란과 첼시 등 여러 명문 클럽을 거친 그는
1994~1995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1995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과
프랑스 풋볼이 선정하는 ‘발롱도르’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두 상을 모두 받은 아프리카 선수는 웨아가 유일하다.
웨아는 내전에 시달리던 조국 라이베리아의 월드컵 예선 출전을 위해
사재를 털고 대표팀 감독·코치·선수를 겸업하기도 했다.
웨아는 “우리가 그(월드컵 예선) 경기들을 치를 때 전쟁은 멈췄고
국민들은 단합했다”(ESPN)고 술회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웨아를 두고 “아프리카의 자부심”이라고 상찬했다.
드로그바도, 토고의 에마뉘엘 아데바요르도 그를 보며
유럽 축구에 진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 ‘킹 조지’로 불린 웨아가 정치에서도 ‘킹’에 올랐다.
28일(현지시간) 치러진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조셉 보아카이 현 부통령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5년 첫 대선 출마 이후 12년 만에 일궈낸 승리다.
하지만 감격은 잠시일지 모른다.
라이베리아는 두 차례 내전으로
25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몇 해 전에는 에볼라 사태로 수천명이 숨졌다.
국민의 80% 이상이 하루 1.25달러(1334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최빈국이다.
영국 가디언의 논평처럼
웨아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경기의 시작”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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