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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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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8-10-19 14:34 조회2,7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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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나치 독일과의 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나라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모두 2천만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스카룝스코예추모공원에는 전사한 군인과 시민이 100만 명 이상 집단 매장돼 있는데, 그 수가 너무 많고 유해 발굴도 불가능해 이름도 묘비도 없이 사망 연도만 적힌 표지석만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동시에 독일에서도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전사자가 모두 325만 명 정도인데, 그 가운데 280만 명이 러시아와 격돌한 동부전선에서 전사했습니다. 이 정도면 독일과 러시아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셈입니다.

하지만, 통일 전 서독 정부는 1990년대 통일 과정에서 소련의 양해를 얻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경제적 지원이 상당했는데,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정부는 소련에 무려 200억 마르크, 우리 돈으로 12조원이 넘는 돈을 지원했습니다. 금액도 금액이려니와 불과 50년 전 수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을 치룬 나라들끼리의 악수라 우리로서는 쉽게 수긍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무튼, 그런 노력 끝에 패전국 독일은 결국 통일을 완성해냈습니다. 통일의 결과는 경제대국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지구 상 국가 중 규모로 보나 지속가능성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를 꼽으라면 독일을 첫 순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만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함께 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추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에 비하면 우리는 여전히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히려 냉전의 피해를 온몸으로 떠안고 있습니다. 식민지배의 가해자인 일본은 패전 6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가해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북은 물론 남남끼리의 이념대결도 여전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65년째 정전상태입니다.

독일 통일의 핵심은 꾸준한 동방정책이었습니다. 당시 서독이라고 반발하는 국민이 없었겠습니까. 동독과는 죽어도 합칠 수 없다는 시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멀리 내다보는 정부와 정치권의 혜안이 기어코 반대론자들을 설득했고, 베를린 장벽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지난 4월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에서 종전을 합의했습니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 냉전국가의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금방이라도 휴전선이 사라질 것 같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첩첩산중입니다. 게다가 나라 안팎의 냉전 기득권세력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에는 ‘2+4회담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동서독 당사국과 서방 전승국이 포함된 회담이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남북과 미··, 러시아가 포함된 2+4 다자 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 때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어 한반도 통일에 반드시 필요한 회담이라고 생각됩니다. , 소련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경제지원 정책이 주효했습니다. 남북경협이 이를 대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제 6·25 직후 경제 원조를 받던 나라가 더는 아닙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외치던 영미야!”가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 한류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탄허(呑虛)스님의 예언대로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옵니다. 하지만, ‘어느 날까지 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지혜, 인내, 화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통일을 넘어 세계평화와 번영의 새 물결을 내다보는 정치권의 혜안(慧眼)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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