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와 곡우(穀雨)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4-18 18:17 조회1,413회 댓글0건본문
4월 22일은 음력으로 3월 20일 곡우(穀雨)다. 곡우는 24절기 가운데 여섯째 절기로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다. 즉, 곡우가 지나면 여름에 접어드는 셈인데,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곡우는 이름 그대로 풀자면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라는 의미다. 하지만, 꼭 이날에 맞춰 봄비가 내릴 리는 만무하다.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농부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이 무렵이면 못자리를 마련하는 등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데 촉촉이 봄비가 내려야 모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우를 전후해서는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부정한 일을 한 사람은 볍씨를 보지도 못하게 했다.
우리 평창지역에서는 곡우 날 사시(巳時, 오전 9시부터 11시)에 볍씨를 담그면 볍씨가 떠내려간다고 하여 그 시간을 피해 볍씨를 담갔다. 또, 볍씨를 담근 항아리에는 금줄을 치고 간단한 고사를 지냈다.
평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는 곡우와 관련한 다양한 금기가 있었다. 전북 익산에서는 곡우에 궂은일이 생기면 문 앞에 불을 놓았고, 충남 보령에서는 볍씨 위에 솔가지를 덮었다. 경북지역에서는 심지어 이날 부부가 같이 잠자리에 드는 것도 금지했었다고 한다. 토신(土神)이 질투하여 쭉정이 농사가 되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만큼 한해 농사의 첫 출발을 중요시했다.
어디 농사뿐이겠는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첫 출발이 매우 중요하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우면 아무리 용을 써도 마지막 단추가 안 맞는 법이다.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5월 10일이니 딱 18일이 남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두 달 가까이 새 정부의 청사진을 그렸다. 보통의 경우 이 시기가 당선인의 인기가 가장 높을 때다. 정파와 관계없이 ‘새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갈까? 어떤 인물들이 내각을 이끌게 될까?’ 하는 짐작과 기대가 넘칠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기로 치면 지금이 새 정부의 곡우다.
그러니만큼 새 정부의 첫 출발을 앞둔 당선인과 인수위는 농부들이 했던 것처럼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민심을 세심하게 살피고 향후 5년간의 비전을 합리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마음에는 금줄을 치고 언행에는 솔가지를 덮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곳 깊은 산중 절간에도 들려오는 저잣거리 소식은 곡우 때 농부들이 했던 것보다도 못한 것 같다.
안 그래도 민심은 두 동강이 났고 선거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정국은 지뢰밭이다. 벌써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의 극한 대립이 시작된 느낌이다. 뿐인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단 몇 달 사이에 7,000원 하던 칼국수 한 그릇이 1만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게다가 한 달여 후엔 지방선거까지 치러야 한다. 전국 단위 선거가 항상 그렇듯 이번 지방선거에도 한바탕 광풍이 몰아칠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쪽은 절치부심할 테고, 이긴 쪽은 여세를 몰아 지방 권력까지 쟁취하려고 할 것 아닌가? 선거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 보면 쭉정이 농사를 짓게 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G7, 나토, EU 회원국들은 수시로 모여 에너지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러시아의 에너지에 크게 의존했던 것에서 탈피하자는 얘기다. 이 틈에 미국은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대외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이에 대비해야 하고, 군사 강국을 노리는 일본을 견제도 해야 한다. 어물어물하다가는 1~2년은 금세 지나간다. 작은 것은 버리고 대의(大義)를 취하고, 상처뿐인 승리보다는 지면서 상생하는 국가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오대산에는 곡우와 함께 천년 주목에 꽃이 피고 산수유가 만발했다. 우통수에서 시작한 금강연의 물소리는 더없이 청명하다. 새 정부가 곡우 때 농민의 마음을 잘 읽어 한 해 큰 수확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