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과 망문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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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0-25 10:55 조회1,130회 댓글0건본문
강원도민일보(2021. 10. 25)
대장동과 망문문진(望聞問診)
원행스님(오대산 월정사 선덕·조계종 원로의원)
‘망문문진(望聞問診)’. 오대산 조실이셨던 탄허 스님이 생전에 늘 강조하시던 가르침이다. 이 용어는 한의학에서 주로 쓰이는 것인데, 한의사들이 환자를 대할 때 먼저 보고, 듣고, 묻고, 진찰하라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진단법으로, 탄허 스님은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분별하고 판별할 때는 반드시 이 ‘망문문진’을 통하라고 하셨다. 먼저 세 번씩 얼굴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들어보고, 의문점을 물어보고, 그러고 난 후 판단하라는 말씀이셨다.
요즘 ‘대장동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대리 직원의 퇴직금이라는 50억 원은 일 년에 5백만 원씩 저금하면 무려 100년이 걸려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사실 대장동 사건에서 50억은 돈도 아니다. 400억, 700억, 1,000억 등 일반 국민과는 아예 ‘급’이 다르다. 그러니 서민들의 박탈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데, 개발업자들이야 애초에 이익을 보고 달려드는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그 뒤에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는 유명 법조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다. “별로 한 일도 없다”라면서 몇억씩 자문료를 받고 심지어 ‘50억 클럽’이라는 해괴한 명단에도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소승이 80이 넘도록 진흙탕에 꼬리를 끌고 살아왔지만, ‘50억 클럽’이라는 말은 난생처음 들어본다.
그들은 ‘화천대유’를 앞에 놓고 최소한의 ‘망문문진(望聞問診)’이라도 한 것인가? 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했을 수도 있겠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얼마나 이익을 줄 것인지 보고, 듣고, 묻고, 진찰했을 것이다. 그 탓에 국민이라는 환자는 병세가 더 악화했다.
더 심각한 의문은 ‘대장동 사건’이 내년 대통령 선거가 아니면 과연 불거졌을까 하는 것이다. ‘50억 클럽’ 유명 법조인들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적당히 묻히고 적당히 뭉개져 결국 ‘성공한 개발’로 그들 사이에서 회자했을 것 아닌가? 지금까지 모든 부동산 개발이 그러했을 거라는 의심은 그래서 충분히 합리적이다.
동서양 모든 사상을 통찰한 탄허 스님은 잘 알려진 것처럼 주역(周易)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데 ‘대장동 사건’에서 난데없이 주역이 등장해 몹시 민망하다. 다만, 그들은 주역을 잘못 이해했다. ‘화천대유(火天大有)’란 하늘 위에 태양이 솟은 괘로, 크게 형통함, 풍족한 물질을 의미한다. 대장동 주역들이 몇천억을 배당받았다고 하니 주역의 덕을 본 건 맞다. 하지만 이 형통함이 오래 가려면 오만과 방탕을 멀리해야 한다. 품위와 겸손, 간난(艱難)을 알고 나누어야 한다. 주역의 껍데기만 알았기에 ‘대장동 사건’이 터진 것이다.
‘천화동인(天火同人)’은 그 앞 괘인 ‘천지비(天地否·불통과 단절의 시기)’를 지난 후, 사람들을 만나 대의를 위해 우정과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 역시 주역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개발업자와 법조인들이 ‘돈’이라는 대의를 위해 우정과 연대를 실천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천화동인이 성공하려면 사사롭거나 집안끼리 만나거나 천도(天道)를 어기면 안 된다. 이 역시 ‘친한 형님들’이라는 사사로운 인연, ‘법조 카르텔’이라는 집안끼리 만나 천도를 어겼으니 사달이 나도 제대로 난 셈이다. 주역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근본 이치를 따져 인간의 도리를 제시한 것인데 이를 농락했으니 지금의 사태는 사필귀정이다.
10C 중국의 운거 도제선사는 “떡을 한 솥 해놔도 셋이 먹으면 모자라고, 천 명이 먹으면 남는다”라고 했다. 다투면 셋이 먹어도 부족하고 서로 사양하면 천 명이 먹어도 남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반으로 갈라진 한반도, 그중에서도 70%가 산지(山地)다. 5천만이 이 한정된 부동산을 놓고 살아야 하니 옛날부터 땅과 집은 늘 이득의 원천이었다. 이젠 이 부동산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망문문진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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