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불거와 제행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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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2-15 14:24 조회16회 댓글0건본문
올해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 '변동불거(變動不居)'는 2025년 대한민국의 정치적 격랑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변동불거는 《주역(周易)》 계사전에 나오는 말로,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머무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한곳에 고정되어 머무르지 않는다는 동적(動的)인 진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변동불거’의 정신을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는다면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 가장 근접하다 할 것이다. 제행무상은 "모든 현상이나 존재는 영원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라는 의미로, 불교의 근본 사상인 ‘삼법인(三法印)’ 중 하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다가 사라지는(生住異滅) 과정의 연속이라는 진리다.
불교는 이 무상함을 깨닫고 집착을 버릴 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변동불거'가 외부 세계의 변화를 묘사한다면, '제행무상'은 그 변화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내면적 가르침까지 포괄하는 셈이다. 2025년의 격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진리 위에서 평정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25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다시 기록되지 못할 만큼 다사다난하고 격동적인 한 해였다. 연초부터 불거진 정치적 위기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어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깊게 분열된 국민 여론을 여실히 드러냈다. 혼란과 불안 속에서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산적한 국정 과제에 직면했으며, 그 와중에 비상계엄 수사와 재판이라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걷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모든 격변은 우리가 경험한 민주주의의 가장 가혹한 시험대였다. 국민은 광장에서, 그리고 투표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와 민주주의의 원칙만큼은 지켜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일련의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역동적이며, 자신을 정화하고 진화하려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변동불거’ 혹은 '제행무상'의 가르침처럼, 한때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도, 확고부동해 보였던 가치들도 결국 변화하고 만다. 이 격동의 시기에 우리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국민의 뜻만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2025년의 페이지를 덮고 새해를 맞이할 시간이다. 격랑을 겪으며 국민이 깨달은 것은, 정치 지도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시민 개개인의 성숙한 참여와 감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다음과 같은 다짐으로 새 시대를 열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첫째는 화해와 통합의 정신이다. 정치적 분열과 갈등은 우리 사회의 발전 동력을 갉아먹는다. '제행무상'의 이치에 따라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화해와 통합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둘째는 공정의 회복과 신뢰 구축이다. 비상계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불의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고, 사법 정의와 공정 사회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야 한다. 이는 새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 준비다. 정치적 혼란에 가려졌던 경제, 기후 변화, 인구 위기 등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과 책임감 있는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모든 것은 변하며 멈추지 않는다. 이 엄연한 진리 앞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웠던 한 해의 경험을 잊지 않되, 그 경험에 갇혀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는 것, 이것이 2026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다짐이어야 한다. 격동의 시간은 지났고, 이제는 희망과 성숙의 시간을 쌓아 올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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