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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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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4-01-17 13:38 조회4,2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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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변호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변호인 송우석은 파시즘을 애국이라 믿는 공안경찰 차동영 경감을 법정의 증인석에 세워놓고 “국가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차 경감이 머뭇거리는 사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을 들며 “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스스로 답한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다분히 다원론적 국가관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나라의 주인(principal)인 국민은 국회의원이라는 대리인(agent)들을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대리인인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은 행정수반으로서 관료들을 감독·통솔하여 국정 운영을 원활히 하고 사법부는 법치의 준수를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주인과 대리인으로 구성된 삼권분립 체제에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가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고 작동할 뿐이다.

또한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정의, 인도, 동포애로 민족의 단결을 도모하고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 밖으로는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을 국가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자유·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이야기다.

이런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통치능력이 필요하다. 먼저 세금의 징수 또는 다른 수단을 통해 국가의 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가용 재원 없이 안전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는 없다. 국가와 사회의 부를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 배분적 정의의 구현은 여기에 달려 있다. 더 나아가 국가는 다양한 배경·이익·이념을 가진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통합의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국가, 특히 사법부는 중립적인 심판관으로서 공정한 법의 판단과 적용을 통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적 영역에 대한 합당한 규제를 가할 수 있어야 하며,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 국민을 위한 국정 운영이 가능하도록 적절한 소통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라, 행정수반이 제왕적 지위를 누리는 ‘대통령 공화국’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안전·자유·행복이라는 지고의 헌법적 가치도 안녕해 보이지 않는다. 고질화된 평화의 위기는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며, 정부의 대대적 종북몰이와 공안정국, 그리고 정부기관들의 대선 개입은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지도자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체감하는 국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자보가 전국에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세태가 이에 대한 방증이라 하겠다.

양극화 방치, 이분법적 통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국가의 능력도 문제시된다. 세수 확보를 위해 적극적 세정을 펴고 탈세범들을 척결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도가 지나쳐 ‘약탈 국가’라는 불만이 기업인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 터져나온다. 양극화 현상을 방치하고 복지 공약을 내팽개치는 국가로부터 배분적 정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종북과 애국이라는 이분법을 통치 기제로 삼고, 교학사 국사교과서 채택을 무리하게 추진해 사회를 편 가르는 국가가 어찌 국민통합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탄식도 들린다. 더구나 강압 수사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을 양산해왔던 국가(사법부)가 공정하고도 중립적인 심판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간과하고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통해 무고한 시민들만 옥죄는 국가에 공정한 규제 기능을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소통 부재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은 우리 모두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모두 국가의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해 다시금 면밀하게 곱씹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감시와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깨어 있을 때만 국가가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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