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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본 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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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4-03-12 16:44 조회4,6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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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본이란
한지에 먹으로 인쇄한 데다 밀랍으로 도포하는
특수 처리를 한 책을 말한다.

일반 서책(생지본)과 다르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 방식은
실록의 중요성을 감안한
방충·방습이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실록 손상의 심각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전주 경기전에서 내장산 깊숙한 암자로 옮겨졌다.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부여, 정산, 온양,
아산, 수원, 남양, 인천, 부평, 강화, 해주, 안주를 거쳐
마침내 묘향산 보현사 별전….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이
난을 피해 이동한 경로다.

유일하게 전화(戰火)에서 살아남아
그 뒤 만들어진 5대 사고본의 저본이 된
전주사고본의 기구한 운명은 끝이 없다.

지금은 정족산본의 일부인 이 실록이
다른 것과 달리 ‘밀랍본’이어서 더욱 그렇다.

전쟁이 끝난 뒤 전주사고본은 영변부 객사를 거쳐
강화부 사고에 봉안됐다.

조선 조정은 거기서 필요에 따라 실록을
서울로 반출해 재간행 작업을 벌인 뒤
강화부 사고에 재봉안했다.

전쟁터와 장마철 등의 악조건 속에서
여러 장소를 옮겨다녔지만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훼손되기까지는
손상됐다는 기록이 없다.

밀랍본 실록은 그후 대대적인 수리·복원 작업을 거쳐
정족산사고로 이관됐다.

정족산사고본은 일제에 의해
조선총독부 사고로 옮겨져 관리되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넘어갔고
1946년 이후 서울대가 이어받았다.

1950년 북한군은 많은 실록 등의 자료를
의정부까지 운반했다가 적상산본 1질만 가져갔다.

남은 것들은 전시 수도 부산으로 옮겨져
여러 창고를 전전하다
1954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으로 되돌아왔다.

정족산본은 그 후에도
1975년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으로,
1990년 지금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축 서고로
이삿짐 싸기를 거듭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8년간의 연구 끝에
훼손 밀랍본에서 종이와 먹의 손상 없이
밀랍만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초임계 유체추출법(SFE)’이라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151-1호인
정족산본의 손상 진행을 막고
보존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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