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강좌(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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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4-09-13 19:17 조회4,410회 댓글0건본문
인문강좌(달라져야 한다)
‘신문명은 새로운 사고의 틀을 요청한다’를 주제로 지난 3주간 진행된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석학인문강좌를 마무리하는 토론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민회관에서 진행됐다.
민주식 영남대 교수(미학)의 사회로 이승종 연세대 교수(철학)와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가 토론자로 참여한 토론회에서는 문명전환기를 맞이한 한국
사회의 혼란에 대한 분석과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 토론참석자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철학)
이승종 연세대 교수(철학)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
김상환 교수 = 오늘날 우리가 문명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이명현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인류적·지구적 차원에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명현 교수 = 20년 전부터 정보사회, 지식사회,
세계화 등의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르네상스
시기나 춘추전국시대처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문명의 대전환기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대의 철학자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전환기에
새로운 문명의 문제와 씨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신문법 서설>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제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왜 문법이라고 하느냐면, 철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지고지순한 최고의 학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철학이 결국 역사적으로 “자기 시대의 문제에 대한 지적인 응답, 즉 투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 대신에 문법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세계사의 주역’으로 부상할까
김상환 = 세계화 바람이 일었을 때도 문명의 전환기라는 느낌을 가졌는데. 지금은 또 다른 문명의 전환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중국이 세계사의 주역, 리더로 부상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명현 = 중국의 부상은 경제 볼륨 때문입니다.
인구도 많고요. 하지만 실제로 1인당 GNP로 하면 100위 정도입니다. 아직도 못사는 거지요.
그런데 곧 중국의 베이징에서 세계철학자대회가
열립니다. 중국은 서양철학에 대해서는 아직 어린애 수준인데도 이처럼 큰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역사가 이리로 온다. 그러니 정신의 세계도 우리가 선도자 역할을 해야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는
행위겠지요.
하지만 중국은 아직도 덩샤오핑 시대 수준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어요. 이것이 세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승종 교수 = 중국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현재 자신의
영토 내에서 일어난 역사를 모두 자기 역사로
독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때 독일이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해서 그 이전 유럽의 역사가 독일의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중국은 우리 역사의 상당 부분을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가져가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역사를 되찾는 일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명현 = 옳은 말입니다.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그 옆에 있었던 것을 다 중국의 체계
속으로 집어넣었어요.
잘 말씀한 대로 동북공정은 새로운 역사소설을
쓰는 거지요. 여하튼 앞으로 인류 문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의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과거의 그리스가 크지 않았지만 서양 사상의 핵심
거점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내부의 혁명적 사고 전환 필요성
김상환 = 세계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전환을
얘기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안에서도 어떤
큰 변화의 요구가 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도 우리가 사고방식, 사고의 문법, 이런 걸 바꾸지 않으면 안 되고, 문화와 문명적인
차원에서 도약과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명현 =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는 60년 만에
산업화를 이룬 압축성장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산업화에 알맞은 철학이
없었던 것이고, 의식과 생각의 틀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농경사회의 문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정신은 농경문명, 물질은 산업문명이라는
이중 구조의 혼란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이제는 산업문명도 끝나고
새로운 문명으로 가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복잡한 삼중 구조가 된 거지요.
여기에서 세월호 참사 같은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일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그것을 보며 우리도 이제 뭔가 달라져야 하겠다 하는 의식에 사람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봅니다.
계층과 이념의 차이를 다 넘어서서요.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공감지대가 생긴 것이에요. 젊은이들이
희생양이 된 것이지요. 국가와 제도도 개혁해야
하지만, 의식 개혁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나라 철학자들의 임무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도를 고치려고 할 때
아이디어도 내고, 문제를 지적하면서 철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종 = 몇 차례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지적 전통을 나름대로 면면히 간직해왔던
서양에 비해, 이 땅에서 지적 전통은 식민 지배와
서구화 과정에서 절맥되다시피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왜곡과 망각을 강요당했고
정체성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눈부신 외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피폐해진 심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단절된 역사를 해원(解寃)하고 잃어버린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우리에게 놓인 과제입니다.
이명현 = 아주 옳은 지적을 하셨는데, 우리는
단절되고, 그러면서 비굴해지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더 황금만능주의가 된 것이 사실이에요.
우리 세대는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조상을 복원해서 우리의 열등의식을
극복해야 되겠다고 하기도 하고,
또 서양이 위대하니까 그걸 가르쳐야 되겠다는
서양추수적인 사고도 있고요.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예전에 제자들한테 ‘가로대 철학’ 그만하자 하기도 했는데 칸트 가로대, 공자 가로대 해야만 마음이
조금 풀리는 거지요.
그런 거 넘어서야 해요. 이런 것들은 열등의식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창조적으로 시대에 맞는 자기 의견을 막
내놓을 수 있고, 요즘 K팝 같은 걸 만들어내는
겁니다.
전통이 단절되어 있으면 뭔가 허기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배고픔, 갈증은 없어야겠지요.
그런 국가 차원의 운영이 필요하고, 리더들이
젊은 사람들한테 자부심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헝그리 정신’을 대체할 시대정신은
김상환 = 저는 60년 근대화의 배후에 있었던 것은 위대한 이념이나 고상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헝그리 정신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무식한 정신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헝그리 정신으로 안 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세월호 사고가 아닐까요.
헝그리 정신을 대체할 어떤 시대정신의 요청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헝그리 정신이 내용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이라면, 이제는 조금 더 형식적인 과정과 절차에 대한 요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명현 = 제가 이번 강연에서 가장 강조하고자 한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름답다’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지요. 우물 안에서만
살았고, 세계가 그게 다인 줄 아는. 이런 우물이었던 국경 혹은 산, 말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다르게 하는, 그런 공간적·시간적인
장벽을 정보통신기술(ICT)이 다 낮추고 허물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런 장벽이 허물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충돌한 중동 문제처럼, 다른 사람을 만나면 싸우고 죽였어요. 서양 철학에서 다른 것은 원수였어요.
동일성에서 차이가 나오고, 차이에서 대립이 나오고, 대립에서 모순으로 전개되는 것이 헤겔의 변증법입니다. 다른 것은 파멸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동양의 음양사상을 보면, 음양은
다른 것이지만, 양은 음이 없으면 없고, 음은 양이
없으면 없어요.
상대방이 안 가진 것을 서로 보태주는, 그렇게 해서 서로 상대를 살려주지요. 이를 상보(相補) 혹은
상생(相生)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다른 것을 서로 죽이지 말자.
나는 너 때문에 오늘 숨 쉬고 있고, 너는 나 때문에 숨 쉬고 있다. 네가 없으면 내가 없다.
너는 나하고 다르지만, 그 다른 것 때문에 내가
오히려 더 큰 자아가 된다. 이런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다른 것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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