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秋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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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9-18 12:04 조회950회 댓글0건본문
추석이 지났다. 오랜만에 맞은 황금연휴에 국민 모두 즐거운 시간을 계획했을 텐데 들려오는 소식은 썩 즐겁지 않은 듯하다. 오대산 산중에 찾아온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하기를 ‘이젠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석 연휴 기간, 온 나라에 폭염 경보가 울렸다. 심한 곳은 한여름에나 발생할 열대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영동 지역에는 시도 때도 없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고온다습한 바람이 불어와 동남아를 방불케 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기후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에어컨 보급률이 최상위권이다. 에어컨에 의지해 이 불볕더위를 그럭저럭 버티고는 있으나 곧 에어컨도 무용지물이 될 터이다. 더욱이 에어컨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할뿐더러 온실가스 배출 주범인 냉매를 사용한다. 냉매가 대기 중으로 유출되면 오존층을 파괴해 피부암 등을 유발한다. 기후위기를 견디기 위해 기후위기를 더 촉발하는 셈이다.
얼마 전 서울시가 냉매를 줄이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냉매 기기 전산화에 들어갔지만, 이런 날씨가 이어지는 이상 에어컨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세계의 언론과 학계는 우리가 기후위기에 시급히 대처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 공멸 사태가 발생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행동은 매우 느리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 결과가 지구의 미래를 보여주는데도 다들 먼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여긴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에는 ‘히말라야 설산의 새’ 우화가 있다. 이 새는 밤이면 추위에 벌벌 떨며 “날 밝으면 꼭 집을 지으리라”라고 다짐하다가도 막상 날이 밝아 따뜻해지면 “일단 지낼 만하니 다음에 짓지 뭐”라며 유유자적 날아다니곤 했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다가 결국은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는 지금 우리 인류에게 꼭 들어맞는 우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가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을 옥죄는 현안은 하나둘이 아니다. 저출산 문제부터 연금 문제까지 미래는 온통 잿빛이다. 거기에 의료대란은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문제가 어제오늘 일어난 일이 아니다. 최소 20년 전부터 맹아가 싹튼 현안들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차일피일 미뤄왔다. 골치 아픈 문제는 다음 정권에, 그 정권은 또 그다음 정권에 마치 폭탄 돌리듯 떠넘겨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히말라야 설산의 새와 똑같지 않은가?
인간인 이상 어찌 눈앞의 이익에 초연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한 나라를 책임지는 정치권은 더 그러해야 한다. 그들의 생각, 행동 하나에 오천만 국민의 삶이 달려 있다.
양력 9월 23일은 추분(秋分)이다. 추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건 중도(中道)를 의미한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침 없이 양쪽을 다 아우르는 것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살피고, 미래는 미래대로 내다보는, 추분 같은 정치를 기대한다.
옛 속담에 ‘더운 것도 추분까지다’라는 말이 있다. 다행히 추분을 지나 9월 마지막 주부터는 기온이 떨어져 가을 날씨가 이어진다는 예보다. 본격적인 가을걷이를 앞둔 농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식이다. 농민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가을걷이도 풍요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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