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 청탁원고(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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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7-04-18 19:59 조회2,22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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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평론 청탁원고 수정본.hwp (16.5K) 17회 다운로드 DATE : 2017-04-24 18: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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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나물
원 행
월정사 부주지 소임으로 한가한 시간이 전혀 없이 늘 동분서주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지만, 어쩌다 사찰 경내를 한 바퀴 포행을 하며 도량을 돌다가 사찰이 관리하는 밭둑까지 걸어가 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연두 빛 새순이 불쑥불쑥 머리를 쳐들며 온 산과 들이 생동한다.
고소나물은 성질이 차서 몸의 열을 내려 스님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는 나물로 사찰에서 많이 재배하여 먹는 나물이다. 해마다 4월 중순경에 씨를 뿌리면 새 순이 올라와서 여름 내내 가을까지 뜯어먹는 나물이다. 사찰의 밭둑을 새로 고르고 고소나물 씨앗을 뿌린다. 고소나물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먹을 수 있어 스님들의 공양반찬으로 이만한 나물이 없다. 고소나물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냄새가 난다고 하여 고소나물 또는 고수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언뜻 스치는 냄새는 빈대 냄새가 난다고 하여 빈대풀이라고도 부른다.
출가 전에는 서울에서만 학교를 다니다가 마음으로만 염원하던 깊은 산중 오대산에 출가하여 처음 행자생활을 하려니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법당 안에 혼자 들어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가만히 앉아 둘러보면 울긋불긋한 단청이나 탱화나 괘불 그림이 괜히 무섭고 도깨비라도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허한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사찰음식은 일반식과 달라서 그 맛이 담백하고 은근한데 고소나물을 처음 먹어 보니 그 첫 맛은 빈대처럼 비린 냄새가 역하게 느껴져 도저히 먹기가 어려웠다.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렵기만 한 행자시절에 나의 스승 만화은사스님께서는 수행이 깊어지면 빈대나물이 고소나물이 되고 부처님 품안이 가장 편안하고 안온하다는 것을 알 때가 온다고 하셨다.
은사스님의 말씀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 금강연에 나가 큰스님들의 세숫물과 양칫물을 떠다드리고 내 방으로 들어와 기도드리고 공부하고 부처님 전에 마지를 올리는 일상이 거듭되면서 나도 모르게 차츰차츰 고소나물에서 빈대냄새가 사라지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깨비처럼 무서웠던 오방색과 단청의 문양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법당의 천정을 올려다보노라면 그 높은 곳에 올라가 섬세하게 붓놀림을 했을 장인들의 수고와 신심이 느껴져 마음이 찡 하면서 눈물이 핑글 돌고 감동과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되었다.
불화(佛畵)는 그 뜻과 내용이 심오하다. 탱화(幀畵)는 비단이나 베 바탕에 불보살님의 모습이나 경전 내용을 그렸다.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부처님께서 인도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한 법회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는 극락세계를 그린 것이다. 감로도(甘露圖)는 아미타불 일행이 지옥 중생을 맞으러 오는 장면과 지옥 중생을 극락으로 데려가는 보살의 모습이 그려지고 아랫부분에는 지옥이나 현실의 여러 가지 고통이 생생하게 그렸다. 변상도(變相圖)는 부처님의 일대기나 불교 설화에 관한 복잡한 경전이나 심오한 교리의 내용을 한 폭의 그림에 압축한 것이다.
철없는 행자시절에 부처님 교리를 잘 몰라서 무섭다고 느꼈던 불화나 탱화를 가만히 앉아 올려다보며 음미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히 그 뜻을 이해하고 저절로 신심이 장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는 부처님이 계신 법당 안이 가장 편안한 곳이 되었다.
행자시절에는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마지를 지어 들고 걸어가면서도 법당 기둥에 이마를 꽝 부딪치기 일쑤고 목탁을 치면서도 끄덕끄덕 졸기 일쑤였다. 하도 잠이 쏟아져 부처님 제단 밑에 들어가 10분 만 자고 일어나야지 하고 부처님 제단 밑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3일이 지나 있었다. 나를 찾느라 소동을 일으켰던 행자시절도 벌써 50년 전의 일이 되었다.
고소나물은 간혹 처음 먹는 사람도 고소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어 한 번 이 맛을 알면 중독성이 있다. 처음에는 빈대 냄새 때문에 좋아하지 않지만 자주 먹다 보니 어느 새 고소한 맛을 알게 되고 수행도 깊어진다. 고소나물은 고소국을 끓이기도 하고 찌개도 끓이고 나물무침을 해서 먹기도 한다. 고소나물은 두통, 혈액순환, 고혈압에도 도움을 준다. 한방에서는 항암효과가 탁월하여 소화불량, 복통, 염증, 당뇨에 쓰이는 나물이다.
한겨울의 차디찬 오대산 눈보라가 지나가고 강철 바람도 지나고 추위에도 끄떡 없이 온 산과 들은 산나물이 돋아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해서 고소나물 씨앗을 뿌리면 향기를 품은 고소나물이 여름 내내 올라올 것이다. 가을이 오면 대궁에 붙어있는 좁쌀알 같은 씨앗을 받아 잘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뿌린다.
초여름이 오면 고소나물을 뿌리째 캐다가 잘 다듬어 바구니에 씻어 놓으면 고소한 냄새가 공양간을 휘돈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고소나물 한 가지에 참기름을 넣어 밥을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오대산에 출가해서 여러 가지 산나물을 알았지만 밭에서 키우는 고소나물은 조금은 까다로우면서도 그 중에 으뜸가는 행자나물이다. 몸이 약해서 기력을 잃고 입맛이 없을 때 고소나물 한 접시에 간장을 반 숟가락 넣어 참기름 넣고 따끈한 꽁보리밥에 비벼 먹으면 번뇌도 사라지고 기력도 돌아오고 청아한 하늘만큼이나 맑은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나물이 고소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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