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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거스님을 추모하며(도민일보 양1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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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11-19 10:05 조회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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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거 스님을 추모하며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오대산 탄허 문중의 큰 대들보인 여산당 혜거(慧炬) 대종사가 지난 11월 4일 입적하셨다. ‘푸른하늘 웃음소리에 사흘 귀먹었네’라는 스님의 열반송처럼 오대산 구석구석에 스님의 웃음소리가 남아있는 듯해 한동안 귀가 먹먹했다.

 

법랍 64년, 세납 80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윤회의 한 자락을 걷다 가신 혜거 스님의 영결식은 지난 11월 8일 오대산 월정사에서 여러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봉행됐다.

 

스님의 행장은 우리나라 불교 교육의 발자취나 마찬가지다. 스님은 16세 되던 1959년 탄허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어려서부터 한학에 밝았던 스님은 탄허 스님 회상에서 3년 결사 후 스승의 역경 사업을 도왔다. 탄허 스님이 입적한 후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금강선원’을 개설하고 교육 불사와 지역사회 포교에 매진하셨다.

 

스님은 특히 ‘전국 금강경 강송대회’를 열어 ‘금강경’을 불자들에게 전파하는 데에 앞장섰고, 부처님 가르침에 기반한 어린이·청소년 인성교육 및 마음 치유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썼다. 경전 교재, 학술서, 수행 지도서 등 스님이 발간한 저서만 100여 종에 이른다.

 

이 같은 공로로 스님은 2018년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스님은 “세상에 갈등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수행하는 자가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세상을 밝히는 불자가 되자”라는 당부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이듬해에는 대한불교진흥원이 수여하는 제16회 대원상 대상을 받았다.

2020년 대종사 법계를 품수한 스님은 동국역경원 원장에 취임했다. 스님은 임기 내내 한글 대장경 디지털화 사업과 고전 번역의 현대적 해석 등 역경 불사를 진행했고, 올 4월 동국역경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금강선원장,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 한국전통불교연구원장,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장 등으로 일하며 전법과 포교에 대한 식지 않는 열의를 보였다.

 

스님은 현대인을 위해 ‘화엄경’의 요체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2016년 ‘화엄경 소론 찬요’ 역주를 시작해 21권을 펴낸 바 있는데 내년 2월 26권으로 회향할 예정이었다. 마지막 방점을 찍지 못하고 홀연히 떠나신 게 못내 안타깝지만, 스님의 여망은 후대에 이어질 것으로 본다.

 

스님은 불자들을 만날 때마다 늘 마음과 공부, 그리고 실천을 강조하셨다. 매일 경전 하나를 수지독송하고,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선행을 베풀며, 자기 반조(返照)할 것을 당부했다.

 

“마음이 있지만 행하지 못하면 마음이 없는 것과 같고, 마음이 있고 행도 있으면 부처님과 같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스님은 열반 며칠 전 지난 9월 5일 태백산 천제단 아래 「조선국왕 태백산 단종대왕 단종비각」을 둘러보셨다. 비각에는 탄허 스님이 쓰신 비문이 안치되어 있는데, 스승의 발자취를 마지막 눈에 아로새겼을 그 모습이 눈에 선해 온 가슴이 먹먹하다.

 

스님은 열반 직전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기셨다.

 

“물은 물, 산은 산, 이 소식을 그 어디 물어볼까? / 푸른하늘 웃음소리에 사흘 귀먹었네. / 동령에 일어난 구름 서풍에 흩어지니 / 눈앞의 청산에 맑은 바람과 달이 가득하구나.”

 

열반송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보니 살아생전 스님의 청아하고 기품 있던 성정이 느껴진다. 불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셨던 혜거 스님을 선양하는 길이 앞으로도 여러 갈래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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