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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에 품은 반만년(강원일보 6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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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6-25 10:17 조회1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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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에 품은 반만년


원행 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유월은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중에서도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정부기념일이다. 현충일은 지난 1956년, 6·25전쟁 참전용사를 비롯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모든 분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됐다.

현충일이 6월 6일인 까닭은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亡種)과 관련돼 있다. 예부터 망종은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시작하기 좋은 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국가를 지킨 영웅들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도 망종에 진행했다고 한다. 고려, 조선 시대부터 전쟁에서 순직한 병사들의 뼈를 이날 집으로 가져가 제사 지내도록 하거나 유해를 매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있을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 예컨대 눈부신 경제성장이나 세계적으로 높이 솟아오른 국가적 위상은 모두 그분들의 희생 덕분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개인주의와 물질적 풍요가 지속하면서 그분들의 숭고한 넋을 갈수록 잊어버리는 느낌이다. 현충일은 그저 빨간 날, 하루 노는 날로 인식하는 세태로 바뀐 것 같다는 건 소승만의 생각일까? 현충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가구가 절반 이하라는 통계도 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산의 모 아파트에서는 욱일기까지 내걸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해병대 대원과 훈련 중이던 장병이 목숨을 잃었는데 1년 가까이 정치적 공방만 무성하다.

우리는 예부터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는 온 백성이 일어나 국난을 극복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 6·25전쟁 때의 학도병은 물론이고 전쟁 후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온 국민이 경제발전에 매진했다.

특히 불교는 재난과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힘썼다.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건립한 황룡사 구층석탑이나 고려 시대 〈팔만대장경〉 간행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가 있어야 승가(僧家)도 있다는 결기로 승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서 싸웠으며, 사찰을 스님들의 훈련소로 쓰기도 했다. 만해 스님의 독립운동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호국불교에서 호국(護國)은 단순히 나라를 지킨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가르침을 지키는 중요한 덕목이다.

이런 선조들의 희생을 잊는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근본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6월 6일에 펼쳐졌다. 지난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행사가 열렸는데, 조 바이튼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서방 25개국 정상들이 참석해 자유와 인권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한 80년 전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렸다. 이 자리에서 서방 정상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거론하며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했다.

지금 한반도는 다시 긴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의 오물 풍선이 수없이 날아오고 우리는 그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를 재가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중의 대립 역시 격화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유월만 호국보훈의 달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모든 날, 모든 달이 호국보훈의 달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의 희생은 영원히 기억돼야 하고 예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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