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家庭) 없는 가정의 달(도민일보 양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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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5-23 09:33 조회329회 댓글0건본문
원행 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저출산, 자살률, 노인 빈곤, 세대 갈등, 양극화 등 우리나라의 각종 사회 지표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이제 새로운 이슈도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지속해서 악화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고착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려 400조 원을 썼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담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또 하나의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접했다. 가구 및 생활 소품을 판매하는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 이케아의 ‘2023 라이프 앳 홈 보고서’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38개국을 대상으로 작성한 보고서이니 지금 우리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식구들과 함께 웃는 시간이 즐겁다“라는 설문에서 우리나라는 14%로 꼴찌를 차지했다. 평균은 33%다. ‘집에서 자녀나 손주를 키우는 게 즐겁다’라는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8%를 기록했다. 압도적인 최하위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라는 항목에서는 우리나라가 40%를 차지해 너끈히 1위에 올랐다. 아무도 보기 싫다, 건드리지 마라, 라는 의사표시나 마찬가지다. 사회적 활동이나 교류를 거부한 채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히키코모리’가 사회문제인 일본보다도 높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외롭다’라는 것이다. 예부터 끈끈한 정이 자랑이었던 대한민국이 이젠 다들 고독 속에서 파편화한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것을 ‘두 번째 출근’이라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집은 세상의 중심이고 그 속에서 행복과 휴식을 얻어야 할 텐데, 두 번째 출근이 돼버리니 스트레스 지수는 높을 수밖에 없고 에너지 소모는 많아져 대한민국은 늘 피곤하다. ‘번 아웃’이라는 말을 부쩍 자주 쓰는 까닭이다.
어떤 외국 사회학자가 말하기를, 대한민국은 유교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나라라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유교의 공동체 덕목은 사라지고 눈치와 서열만 남았다. 자본주의의 덕목인 자기표현은 버리고 물질주의만 받아들였다. 눈치와 서열이 물질주의와 만나 지금 우리나라를 초경쟁 국가, 번 아웃 사회로 만든 셈이다.
부처님은 가정을 삶의 중심에 두고 그 역할과 의미를 강조하셨다. 가정은 인생의 출발점이자 끝나지 않는 유산으로서 가족이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안정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셨다. 가정은 윤리적 가치와 도덕적인 행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곳이다. 상호존중과 이해, 인내와 관용, 진리와 선(善)의 중요성을 배우고 이를 통해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화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 이는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자 도덕 교과서의 핵심이다.
5월은 가정의달이다. 어린이를 위하고 부모를 사랑하자고 특별히 만든 달이다. 이런 선행이 5월 한 달에만 있을 수는 없다. 일 년 열두 달,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부모는 업무와 성과에 지치고, 아이들은 일명 ‘학원 뺑뺑이’에 고단하고, 청년들은 무한 경쟁에 피곤한 사회.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분명 아니다. 이런 구조에서 웃음과 행복과 휴식이 나올 수 없다. 신생아의 울음소리는 더더욱 듣기 힘들다. 저출산 문제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 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가정을 살려야 한다. 가정은 사회의 모든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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