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지본처(還至本處) (도민일보 양9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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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9-19 11:36 조회643회 댓글0건본문
환지본처(還至本處)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문화는 한 민족, 한 국가, 한 사회구성체의 정신이다. 그러니 문화재는 그 정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재는 원래 있던 그 자리, 태생지에 있어야 하는 게 백번 맞다.
한때 나라에 힘이 없을 때, 열강들에 의해 우리 정신의 결정체가 원래 그 자리를 벗어나 타관을 떠돌았다. 범죄와 진배없는 약탈을 무효화 하고 다시 회수하는 작업이 지속해서 진행됐고, 많은 성과를 올렸으나 아직 고향 잃은 문화재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100년이 넘는 타향살이를 끝내고 오는 11월 오대산 월정사로 돌아온다. 1913년 일제에 의해 반출된 지 무려 110년 만이다. 보물인 조선 왕실 의궤 오대산 사고본도 101년 만에 함께 귀향한다. 지난 2006년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은 뒤에도 17년 동안이나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실록이 이제야 원래 있어야 할 본처(本處)로 돌아오는 것이다.
오대산 월정사는 지난 2019년 지상 2층 규모의 국립 조선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을 건립했는데, 이곳으로 실록 75책과 의궤 82책이 돌아온다. 월정사는 박물관 리모델링을 모두 마치고 11월 19일 개관식을 열 예정이다.
반가운 소식이 또 있다. 일제강점기에 무단반출되었던 지광국사탑이 112년 만에 다시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지광국사탑은 지광국사(984∼1070)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광국사탑비와 함께 세운 사리탑이다.
지광국사탑은 고려 불교 미술의 백미다. 이를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제가 통째로 뜯어 일본 오사카로 무단반출했다. 191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복궁에 놓였지만,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완전히 부서졌다.
전쟁 이후 보수 작업을 거쳐 경복궁 뜰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2016년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으로 옮겨 보존·복원 작업을 마쳤고, 드디어 지난 8월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완전한 복원은 내년 하반기쯤 이뤄질 예정이다.
한편, 법천사지 주변의 거돈사지에는 원공국사를 기리는 탑이 있다. 이 탑도 지광국사탑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뜯어간 것을 되찾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긴 후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현재 거돈사지에는 있는 탑은 복제품이다. 이 탑도 하루속히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열강에 의한 문화재 약탈은 우리나라만 겪은 일이 아니다. 식민지를 경험한 모든 나라에서 자행된 일이고, 이후 환수가 진행됐으나 아직도 엄청난 수의 문화재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78년 ‘불법이전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 간 위원회’가 설립되는 등 나름대로 결실을 봤지만, 위원회의 중재 및 조정 결과는 구속력이 없다. 그 조정마저도 유네스코 회원국 및 관련 회원에게만 해당하고, 민간인은 해당하지 않기에 소유권 등 여러 법적 문제에 부딪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고,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으려는 국민적 공감대가 널리 확산해야 한다. 먼 타지에서 방황 중인 우리 문화재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역사적 고난과 아픔을 가진 소중한 문화유산이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과 조선 왕실 의궤 오대산 사고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강원특별자치도민들의 높은 관심과 애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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