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도민일보 양5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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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5-26 10:13 조회671회 댓글0건본문
쌀겨와 무반찬의 무게를 아는 권력-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지난 5월 7일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빼면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은 무려 12년 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일본 총리가 방한했다길래 일본 스님 한 분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 드릴까 한다.
다쿠안(澤庵) 선사(1573~1645)는 일본 에도시대 초기의 임제종 고승이다. 어느 날 다쿠안 선사가 있는 동해사(東海寺)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장군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다가 식사를 하게 됐는데, 밥상 위에는 절인 무 반찬 하나만 올라왔다. 이를 먹어본 도쿠가와가 말했다.
“이것은 처음 보는 반찬인데 무엇으로 만든 거지요?”
“무를 쌀겨와 소금으로 절였을 뿐입니다.”
도쿠가와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다쿠안 선사는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으니 늘 진수성찬을 드실 테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주로 이런 음식을 먹습니다. 두말 말고 드셔보시지요”라고 말했다.
잠시 멈칫거리던 도쿠가와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 맛이 천하별미군요. 선사께서 고안하신 모양이니 앞으로 이 무를 다쿠안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우리도 즐겨 먹는 단무지, 옛날엔 ‘다꽝(다쿠안)’이라고 불렀던 노란 무절임의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다쿠안 선사의 가르침은 ‘정치권력자일수록 매사에 두려워하라’라는 것이다. 백성의 신산한 삶 위에 그들이 누리는 권력이 있느니만큼 그것을 누리려고만 하거나 잘못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설법이다.
오대산 조실이셨던 탄허 스님도 시은(施恩)을 두려워하라고 하셨다. 시주의 은혜는 하늘보다 무겁고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공연히 신세 지지 말 것을 철저히 가르치셨다. 또, 시주의 은혜를 무섭게 여기지 않으면 수행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하셨다.
정치인은 국민의 시주로 먹고사는 존재다. 활동비는 물론 정치적 지지도 큰 시주다. 그들이 누리는 모든 영욕은 국민이 준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은 당연히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 토론 때마다 나오는 질문이 있다. 요즘 지하철 요금이 얼만지 아느냐는 것이다.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냐는 의견도 있지만, 실은 국민을, 국민의 삶을 두려워하라는 뜻이다. 후보 대부분이 고위직 출신일 터이니 지하철을 탈 일도 없고, 굳이 지하철 요금이 얼만지 알아야 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은 하루도 빠짐없이 지옥철에 부대끼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의 시주를 얼마나 무겁게 생각하고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다쿠안 선사로부터 쌀겨와 소금에 절인 무 반찬의 의미를 깨친 덕에 일본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는 양력 5월 27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연등을 달 수 있게 됐다. 더없이 기쁜 날이지만 지금 부처님이 이 세상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궁금하다. 계급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 등 온갖 문제가 폭발할 지경이고, 지구는 지구대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21세기 문명사회에도 전쟁과 내전은 여전하고 그로 인한 학살과 보복도 끊이지 않는다. 아마 부처님은 염화미소 대신 깊은 한숨부터 내쉬지 않으실까 모르겠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되새기며 봉축 연등 하나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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