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스님 행장/ 조정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8-05-10 03:45 조회2,898회 댓글0건본문
탄허 큰스님은 1913년 전북 김제군 만경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홍규 선생의 둘째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부친 김홍규 선생은 당대에 상당한 대부호로 수십만 원의 독립군 자금을 대주었을 정도였습니다. 독립군 자금 10만 원을 추가로 전달하려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1921년 10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전북 김제군 만경면에 사는 김홍규가 10만 원의 독립자금을 전달하려다가 발각됐다”고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10만 원. 지금에야 큰돈이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 10만 원은 가히 천문학적인 거액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경부선 철도가 건설될 때 들어간 총 비용이 20만 원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돈인지 알 수 있지요.
탄허 큰스님은 학교 교육은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친과 조부로부터는 한학의 기초를 배우셨고 향리의 선생으로부터 『사서』와 『삼경』을 비롯한 유학의 전 과정을 배우셨습니다. 17세 때 충남 보령으로 거처를 옮겨, 기호학파 면암 최익현의 재전(再傳) 제자인 이극종 선생으로부터 『시경』을 비롯한 『삼경』, 『예기』, 『춘추좌전』 등 경서(經書)를 수학하고 유학의 학통을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유학과 노장사상의 경전을 수백 번 되풀이 독(讀)하고 나중에는 경전을 아예 통째로 줄줄 암기할 정도였고, 18세 때는 처가에서 소를 팔아 『주역』을 사주자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 글방에서 흡사 미친 듯 춤을 추며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큰스님은 『주역』을 500독 하셨답니다.
이후 한암 대선사와의 희유한 인연으로 오대산으로 출가하여 시대의 대강백, 대선사가 되셨습니다.
탄허 큰스님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