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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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8-04-28 17:36 조회2,567회 댓글0건본문
4.27 판문점 선언에 부쳐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되었으나 한반도는 38선에 의해 두 동강이 났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에게 이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김 구 선생은 「삼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란 글로 이렇게 호소했다.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선생에게 지상의 목표는 “동족상잔의 유혈과 국토양단의 위기를 방지하고 자주·민주의 원칙하에 조국의 완전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지만, 1949년 6월 26일 자신의 집무실인 경교장(京橋莊)에서 암살당했다. 그리고 딱 1년 뒤에 한국전쟁이 터졌고 3년 여 전쟁을 겪다가 휴전 협정과 동시에 휴전선이 한반도의 허리를 동강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2018년 4월 47일 금요일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노동위원장이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이 분계선을 넘어 남한 땅을 밟았고, 몇 분 후 둘은 즉석에서 합의하여 북한 땅으로 한 걸음 넘어갔다. 즉흥적인 그 발걸음은 사뭇 가벼웠지만, 감동의 진폭은 웅장했다. 이 장면은 생방송으로 전 세계 방송에 중계되었고 일산 킨텍스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이를 지켜보던 세계 언론인 약 3,00명은 일시에 터뜨린 함성이 드높았다.
김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역시 갈라져 살 수 없는 한 혈육이며 동족이라는 것을 가슴 뭉클하게 절감했고 단합하여 화목하게 살아야할 한 핏줄을 이은 한 핏줄이다”라고 하면서,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과 남은 본래대로 하나가 되어 민족 만대의 끝없는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판문점 선언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2.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3.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어미가 모두 “…ㄹ 것이다”로 돼 있는 이 선언문은 강력한 구속력을 전제하진 못했지만, 다소 느슨하고 여유로운 다짐의 선언이 더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다짐의 주체는 남과 북의 국민이 되고 다짐의 증인은 세계의 온 인류가 될 것이다.
남북정상 판문점 회담은 인류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한 걸음임에 틀림없다. 김구 선생이 목숨을 걸고 염원했던 “동족상잔의 유혈과 국토양단의 위기를 방지하고 자주·민주의 원칙하에 조국의 완전독립을 쟁취”가 이제야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우연찮게도 소납은 딱 일주일 전 4월 21일 경교장에서 열린 《남북제정상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7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여 발언을 했었다. 1948년 당시 이승만에 의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북의 정당ㆍ사회단체 대표들이 5ㆍ10단독선거를 저지하고 통일민주국가 수립을 위해 대책을 논의한 연석회의다. 그때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의 결정에 따라 남한에서는 김구, 김규식을 중심으로 5ㆍ10선거 반대투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지만, 김구 선생은 이승만과의 극심한 갈등을 겪다가 그해 6월 26일에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安斗熙)에 의해 암살당했다.
김구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시 한 수가 새롭게 다가왔다. 최초의 남북정상 판문점 회담이라는 새 역사를 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하며, 김구 선생이 마음 깊이 새겼던 서산대사의 시 한 수를 헌사한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湖亂行 (불수호란행)
今日俄行跡 (금일아행적)
燧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 걸을 땐
행여 한 걸음이라도 어지럽게 가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
뒤에 길잡이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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