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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남사고 선생의 정신 (강원일보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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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5-30 15:36 조회2,2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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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남사고 선생의 정신

 

원행 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올 들어 정쟁(政爭)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여의도의 말은 점점 사나워지고 행동은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정치 일정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기간 중간쯤 와 있고, 내년엔 총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치라는 게 내가 잘하는 것보다 남이 못하기를 기다렸다가 물고 늘어지는 게 더 효과적이다 보니 다툼은 서로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쟁이 정쟁으로 그치지 않고 민생을 외면한 채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어 걱정스럽습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거창한 시작과 달리 별다른 성과를 못 내고 있고, 경제는 경제대로 힘든 판국에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소승이 머물고 있는 오대산에도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땐 지혜로운 정치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탄허(呑虛) 스님도 법문 때마다 정치인의 자격과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오대산을 찾은 정치인들에게도 바른 정치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특히, 정치인은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다본다는 것은 주술적인 예언이 아니라 국리민복을 위한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대책을 만들고 대책은 어려움을 극복할 길을 열어 보이는 법입니다. 조선시대 우리 강원도에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앞날을 예견하고 권력자에게 끊임없이 충언한 정치인이 많습니다. 이율곡과 남사고(南師古) 같은 분이 대표적입니다. 두 분은 선조 때 임진왜란이 닥쳐 올 것을 예견했습니다. 만리경(萬里鏡)을 가지고 있어 내다본 것이 아니라 조선을 둘러싼 정세를 면밀히 파악한 끝에 내린 예견입니다. 정치인으로서 지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예견에만 그친 게 아니라 그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율곡 선생은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다가 당쟁으로 쫓겨났습니다. 대란을 예견하고 난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자신의 직위를 걸고 노력했습니다. 비록 난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극복해야 하며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줬습니다.

 

남사고는 선조 이전 명종 때 사람으로 강원도에 살았습니다. 율곡 선생과는 다소 결이 다른 사람으로 풍수천문(風水天文), 복서(卜筮), 상법(相法) 할 것 없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결을 갖고 있었습니다. 남사고는 명종 말년에 일찍이 말하기를 머지않아 조정에는 당파가 생기겠고, 또 오래지 않아 왜변이 일어나리라. 그런데 만약 진년(辰年)에 일어나면 오히려 구할 길이 있지만 사년(巳年)에 일어나면 구하기 어려우리라라고 예견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조정에는 을해년(乙玄年)부터 당파가 생겼고, 왜란은 임진년에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역학에 밝아 이 같은 예언을 한 것으로 알지만, 실은 국내 정세와 국제 정세를 두루 파악하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정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쟁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넘지 말아야 할 금도가 있고, 지켜야 할 기준이 있고, 지혜가 밑바탕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정체돼 있습니다.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급변하고 있습니다. 혹시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율곡 선생과 남사고 선생처럼 지위를 염려하지 않는 기개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강원일보 2019-5-30 ()자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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