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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후(三不朽) - (도민일보 양9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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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9-09 09:50 조회1,2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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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후(三不朽)
▲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삼불후(三不朽)’. 썩지 않는 세 가지라는 뜻으로, 덕(德)과 공(功), 말(言)을 세우는 것을 이른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학자 좌구명이 공자의 ‘춘추’를 해석한 책 ‘좌씨전’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장 뛰어난 것은 덕을 세우는 일이고(太上有立德), 그 바로 뒤에 공을 이루며(基次有立功), 그 다음으로는 말을 세우는 것이다(基次有立言). 비록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아 이것을 썩지 않는다고 말한다(雖久不廢 此之謂不朽).”

인간은 언젠가 죽음에 이르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해 덕과 공을 세우고 뛰어난 작품으로 업적을 이룬 것은 썩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는 뜻이다. 덕과 공, 후세에 교훈을 주는 진리는 언제까지나 남는 중요한 세 가지라는 것이다.

정치의 시기를 맞아 불현듯 이 ‘삼불후’가 떠오른다. 여야를 포함해 스무명에 가까운 대권 예비후보들이 등장해서 서로 자신이 이 ‘삼불후’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삼불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다른 의미에서 ‘불후(不朽)’가 맞기는 하다. 소셜미디어 탓이다.

지난 십수년 동안 해 온 모든 행동과 말이 소셜미디어에 썩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는 잘 포장되어 예비후보의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신을 옭아매는 치명적인 덫이 된다. ‘실수였다, 본의가 아니었다, 앞뒤 맥락이 생략됐다’라고 항변해도 이미 썩지 않는 ‘불후’가 되어있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만큼 어려운 게 없다.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치란 늘 나쁜 쪽의 ‘삼불후’만 기억하기 쉬운데, 혹시나 정치인으로서 조금만 삐끗한다면 이제 소셜미디어에 의해 영원히 썩지 않는 멍에를 지게 될 것이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국민을 위한 진정성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됐다.

썩지 않는 ‘삼불후’는 또 있다. 플라스틱, 비닐, 탄소다. 좌구명의 ‘삼불후’가 인류를 위한 선한 것이라면 이 ‘삼불후’는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최악의 것이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21년부터 2040년 사이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제시한 2030∼2052년보다 10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현재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09도 높아졌고 해수면도 1901년보다 0.2m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남유럽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캐나다, 호주의 대형 산불 등 극한 폭염으로 발생한 극한기후 발생 비율도 4.8배 늘어났다.

앞으로 10년 후쯤 부산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부산뿐 아니라 바다를 끼고 있는 세계의 대도시들이 마찬가진데,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이미 수중 물막이를 설치하고, 미국 뉴욕은 거대한 섬을 따라 방호벽을 둘러치겠다는 계획이다. 부산은 해수면 상승과 자연재해에 대비해 물에 뜨는 해상도시를 추진 중이다.20년 후면 부산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경고도 있다.

이러한 지구 위기는 모두 인간이 만든 ‘삼불후’의 영향이다. 한때 양질의 콜레스테롤을 위해서 육식보다 바닷물고기를 섭취하라고 했는데, 이젠 그 반대가 됐다. 해양 중금속 오염 때문에 바닷물고기가 몸에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돌고래 뱃속에 가득 찬 플라스틱이며 페트병에 목구멍이 막혀버린 거북이 사진은 이제 더는 새로울 것도 없이 일상이 됐다. 그래서 지금의 코로나19는 지구적 문제에 대한 지구적인 해결책을 찾으라는 숙제이자 스승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소승은 지난 3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생명존중, 기후 위기, 환경생태 등을 주제로 토론하며 우리 사회의 집단 지성을 모아가는 ‘K 문명 포럼’을 창립했다. 포럼의 모든 활동을 유튜브에 올려 ‘참선과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각계의 목소리를 전달할 생각으로 만든 것인데, 첫 프로그램으로 가톨릭 함세웅 신부를 초청해 종교의 본질과 윤리, 성직자의 시대적 역할 등을 주제로 대담했다.

오는 16일에는 두 번째 대담으로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전 유엔 사무총장)을 초청해 백척간두에 서 있는 지구의 앞날을 이야기해볼 계획이다. 썩지 않는 ‘삼불후’가 썩지 않는 ‘삼불후’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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