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의 생명(도민일보 양4.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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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27 10:18 조회1,316회 댓글0건본문
코로나19 이후의 생명
▲ 원행스님 오대산월정사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흔히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제주 4·3사건,4·19혁명,7년 전에 일어난 4·16 세월호 참사 등 4월에 유독 비극적인 사건이나 역사적 사건이 자주 일어나서 하는 표현일 것이다.‘4월은 잔인한 달’은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 첫줄에 나오는 문구인데,사실 그 속뜻은 ‘생명’이다.겨우내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대지가 4월이 되자 생명을 되살리려는 모습이 너무나 격해 잔인할 정도라는 역설적 표현이다.그러니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생명의 달’이다.
하지만,시인의 역설적 표현과는 달리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4월은 진짜 잔인하다.우선 2년째 접어들어서도 진정되지 않는 코로나 사태가 그렇고,더디기만 한 백신 접종이 그렇다.그뿐인가?세계 최강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에서 백주에 벌어지는 인종차별,혐오범죄에 미얀마 사태까지 외신은 쉴 틈이 없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갖가지 끔찍한 패륜범죄가 신문 사회면을 연일 장식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문명은 갈수록 발전하고,종교인 숫자는 그 어느 때보다 많다.그런데도 사회는 더 불안하고,약자에 대한 공감은 줄어들고,분노와 절망은 하늘을 찌른다.심하게 표현하자면,자비심(慈悲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소승은 지난 3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생명존중,기후위기,환경생태, 종교 등을 주제로 토론하며 우리 사회의 집단 지성을 모아가는 ‘K 문명 포럼’을 창립했다.포럼의 모든 활동은 유튜브 방송에 올려 ‘참선과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각계의 목소리를 전달할 생각이다.지난 3월 18일에는 포럼 출범에 맞춰 가톨릭 함세웅 신부를 초청해 종교의 본질과 윤리, 성직자의 시대적 역할 등을 주제로 대담했는데,그날 가장 많이 거론된 건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어쩌면 이 질문은 수천년 이어진 아주 오래된 질문일 수 있고,너무 많은 사람이 던져 이제는 고전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율주행차가 도심을 질주하고 화성에 관광 우주선이 가는 이 시대에 다시 화두로 등장했다.꼭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함세웅 신부는 그날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종교란 ‘인간의 삶 자체’이며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두 축복’이라고 말했다.그래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고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大慈大悲) 화엄 사상(華嚴思想)과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세상 모든 것이 진리이고 세상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종교학 개론 첫 페이지에나 나올 법한 이 단순한 진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현재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코로나며 분노 범죄를 막을 길이 없다.
코로나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다.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처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다.그러니 자연의 하나라는 건데,자연이 그럴 땐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다.그 말을 경청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인류는 제 아무리 효과 좋은 백신을 만들어내도 세세년년 바이러스에 시달릴 것이다.분노 범죄도 마찬가지다.이번 코로나19를 ‘자연의 채찍’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이번 기회에 몸만 가릴 게 아니라 마스크로 입을 좀 가리라는 말도 있다.언어의 유희라기에는 정곡을 찔리는 아픔이 너무 크다.
우리는 내년에 두번의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혹시 극한대립 속에서 우리가 당면한 생명존중,기후위기,환경생태라는 절체절명의 화두가 잊힐까 걱정이다.부디 정치권의 숙고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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