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동짓날에(강원일보 양12.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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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17 10:32 조회1,509회 댓글0건본문
경자년(庚子年) 동짓날에
원행 월정사 선덕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오는 21일은 경자년(庚子年) 동짓날이다. '동지(冬至)'는 24절기 가운데 스물두 번째 절기로, 팥죽을 쑤어먹는 명절이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온다. '공공 씨(共工 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 귀신이 됐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 팥을 두려워했기에 사람들이 전염병 귀신을 쫓아내려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동지는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이래저래 올해 동짓날은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에 빠진 인류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죽어 전염병 귀신이 된 공공 씨의 아들은 코로나19와 비교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팥죽 쑤어 먹기'와 비슷하다. 게다가 다소 잠잠해지는 것 같던 코로나19가 겨울철을 맞아 다시 기승을 부리는 지금의 상황은 '밤이 가장 긴' 칠흑의 시간이기도 하다.
올해 경자년은 인류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에게 닥친 가장 혹독한 시련의 한 해였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걸쳐 몇몇 세계적인 재앙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전 세계를 도탄에 빠뜨린 사건은 없었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는 인류문명을 근본에서부터 성찰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독일의 고고학자 헤르만 파르칭거는 “모든 문명은 붕괴한다. 그것이 인간 조건이다”라고 말했지만, 인류의 시각에서 볼 때 '그 하찮은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새로운 문명을 개척해야 하는 처지는 매우 곤혹스럽고 고통스럽다.
코로나19를 극복한다 해도 문제는 또 있다. 생태학자들은 2020년부터 향후 10년을 지구생존을 위한 '마지막 남은 시간'으로 경고한다. 산업체제를 바꿔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급격하게 줄여야 미래가 존속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번 코로나19를 인류가 앞으로 맞을 생태 위기의 한 양상이자 징조로 본다.
이번 코로나19는 인간을 숙주로 삼았기에 화근이 됐다. 본래 자연 상태에서 동식물과 벗 삼아 존재해야 할 바이러스가 자신들의 서식지가 붕괴하자 인간의 영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결과다. 인간을 숙주 삼은 바이러스가 향후 어떻게 변종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다. 다만, 지금과 같은 자연 파괴적인 삶의 양식을 지속하는 한 이들 변종 속도를 과학과 의학이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탄소 중립'이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에 맞먹는 환경보호활동을 펼쳐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선언은 현 정부가 특별히 '탄소 중립'에 관심이 지대해서 나온 게 아니다. 앞으로 탄소 중립을 준수하지 않으면 수출이 힘들어진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초거대 세계적 기업들은 이미 탄소 중립적인 제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부품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수출에 주력하는 우리 경제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을 '희망'과 '새로운 출발'로 봤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1년이었지만, 동지 팥죽 한 그릇으로 신축년(辛丑年) 새 희망과 새 출발을 다져보면 좋겠다. 올 한 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봉사한 수많은 의인이 있었다. 경자년을 보내고 신축년을 맞는 지금, 이분들의 희생에 깊이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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