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신(도민일보, 양 11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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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11-17 11:29 조회843회 댓글0건본문
강원도민일보(2022년 11월 17일)
〈국민정신〉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오대산 월정사는 지난 11월 8일부터 임인년 동안거에 들어갔다. 동안거 결제 날, 평소 알고 지내는 한 사람이 소승을 찾아왔다. 서로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던 끝에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스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국가가 있기는 한 겁니까?”
이태원 참사를 두고 하는 얘기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압사하고 170여 명이 부상한 이 미증유의 참사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참사가 일어났을까요? 경찰과 구청이 안일하게 대처했다느니, 재난 매뉴얼이 부족하다느니 말은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소승도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태원 참사 이후 지금까지 정부와 정치권의 대처 과정을 보면서 자괴감만 더 깊어지고 있던 터였다. 소승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우리 오천만 국민의 정신이 전반적으로 해이해져 있습니다. 물질적인 번영에 정신적인 성숙이 따라오지 못한 탓입니다. 물질과 정신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데, 물질에만 가치를 두다 보니 모든 게 균형을 못 잡는 거지요.”
대답이랍시고 했지만, 서로 마음은 더 참담해졌고 한참을 말없이 그러고 있다가 그는 총총히 일어났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수탈과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적같이 살아났다. 국민총화를 통해 끝내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이젠 반도체나 영화, 대중음악 같은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다툰다. 군사적으로도 손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해 무기 원조를 받던 처지에서 여러 나라에 무기를 수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정신문화는 성장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중산층의 기준으로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연 수입 같은 걸 따질 때 구미 선진국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공공선에 관한 관심, 하나 이상의 예술·스포츠 활동 같은 항목으로 구분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법과 제도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SPC 사건이나 카카오 화재사건, 쿠팡 사건 모두 덩치가 커지고 복잡해진 경제 수준에 걸맞은 법과 제도가 미비하거나 자본의 무한한 갑질과 탐욕 때문에 일어났다. 광주 재개발 붕괴사건, 아파트 붕괴사건도 불과 얼마 전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온 국민의 정신적 성숙이 갑자기 이루어질 수는 없다. 구미 선진국들도 수백 년, 수천 년 시행착오와 각성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건 마음의 평정, 즉 ‘심평정(心平靜)’을 구하는 일이다.
불교의 요체 가운데 하나가 ‘부동심(不動心)’이다. 중생의 마음은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어나듯 한 생각을 일으키면 인연을 따라 일파만파가 되어 갖가지 분별심을 만들어 낸다. 이 분별심이 집착과 갈애(渴愛)를 낳는다. 이에 원래 진여(眞如)한 본성 그대로 오고 감이 없이, 생멸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마음이 부동심이다. 즉,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건데,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일평생 수행 정진해도 얻을까 말까 한 불교 핵심이다.
그러나 노력은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비극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 속 동안거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안거란 매년 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 3개월간 스님들이 외출을 금한 채 참선하고 용맹정진하는 수행 기간이다. 여름엔 하안거를 한다. 아무리 바쁘고 마음이 복잡해도 하루 중, 일주일 중, 한 달 중 어느 한 시기를 택해 마음을 비우고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북미 원주민의 명언 중에 이런 게 있다. “빨리 달릴 땐 중간에 가끔 쉬어줘야 한다. 뒤처진 영혼이 따라올 수 있게.” 지금 한 번쯤 곱씹어 봐야 할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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