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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자희(知音者稀) 도민일보 양1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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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1-26 11:51 조회1,1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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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자희(知音者稀)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오대산 조실을 지낸 한국 불교계의 대 석학 탄허 스님은 생전에 화엄경 특강을 할 때 국악인들을 초청해 작은 산사음악회를 열곤 하셨다. 스님은 음악회가 끝나면 참석한 대중에게 ‘지음자희(知音者稀)’라는 가르침을 펼치곤 하셨는데, 그 뜻은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다’라는 것이다. 국악인들이 평생 수련한 오묘한 소리의 세계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한 듯하지만, 스님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만큼 ‘듣는 게 힘들다’라는 가르침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잘 들어야 하고, 듣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관상학에서는 크고 넓은 귀를 좋은 상으로 본다. 고 노태우 전 대통령도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자신의 큰 귀를 장점으로 내세운 적도 있다. 무엇보다 큰 귀, 하면 부처님이 떠오른다. 부처님이 모든 중생의 소리를 자비의 정신으로 경청할 수 있는 것도 ‘천이통(天耳通)’이 열린 큰 귀 때문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도 있다.


이 모두 말하기보다 듣기의 중요성을 드러낸 사례다. 하지만 ‘잘 듣기’는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도 필요하다. 그래서 듣기보다 말하기가 훨씬 쉽다.


바야흐로 말의 시대가 왔다. 이제 입 가진 이는 세상 도처에 자신의 말을 쏟아낸다. 각종 소셜미디어는 말의 용광로가 돼버렸다. 듣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무차별하게 쏟아내는 데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인내, 배려, 공감, 하심은 설 자리가 없다. 더 상처 주고, 더 모욕하고, 더 공격하는 일종의 ‘무례(無禮)의 인플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특히 그렇다. 정치인 개개인의 말은 물론 공당(公黨)의 공식 논평조차 말의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시쳇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 극한대결에서 경청은 한가한 얘기가 돼버렸다. 이를 따르는 각 정파 지지세력의 말은 브레이크가 사라진 지 오래다.


백번 양보해서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선거 국면이니 일단은 접어두자. 하지만, 다음 대통령은 그 어느 시기보다 듣기를 잘해야 한다. 수없이 많은 국민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그 목소리가 여과 없이 세상에 떠돈다. 사람끼리, 조직끼리, 계층끼리, 지역끼리 이해관계는 난마처럼 얽혀 실마리를 찾기가 여간 쉽지 않다.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려 하면 이 위중한 시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수십 개의 악기가 저마다 내는 소리를 듣기만 할 뿐이다. 듣고 조율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5000만 국민, 각계각층이 내는 소리를 무한한 인내심과 공감력을 바탕으로 경청해야 한다. 그뿐인가? 지구가 내는 신음도 들어야 하고, 미래가 다가오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경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는 시대다.


불교에서는 ‘인욕(忍辱)’을 해탈에 이르는 중요한 방편으로 보는데 ‘참는다’라는 뜻처럼 보이지만 이보다 훨씬 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인내는 물론 욕됨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기꺼이 받아안아야 하며, 모든 일에 희로애락이 없고 동요됨이 없이 사물의 본성이 평등무이(平等無二) 함을 깨닫는 중요한 수행법이다. 인욕 없이는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탄허 스님이 유묵의 계인(契印)에 새긴 인의자실(忍衣慈室)도 ‘인내의 옷은 자비이니 자비로써 집으로 삼으라’라는 정신이다.


새 대통령에게 부처님의 ‘천이통(天耳通)’이나 ‘인욕(忍辱)’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다만, 삼청일언(三聽一言), 한번 말하려면 최소한 세 번은 들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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