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와 새로운 리더십(강원일보 양1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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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1-16 10:44 조회1,036회 댓글0건본문
강원일보(2021. 11. 16)
도(道)와 새로운 리더십
원행스님(오대산 월정사 선덕·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우리는 내년 두 번의 큰 선택을 앞두고 있다. 3월에는 새 대통령을, 6월에는 새 지방자치 단체장을 뽑아야 한다. 내년에 새로 뽑힐 대통령과 단체장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겁다. 복잡한 국제정세, 남북문제, 기후위기, 4차산업, 포스트 코로나 등 난제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뿐인가? 나라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청년, 일자리, 저출산, 고령화, 부동산 등 갈수록 악화하는 문제에 세대 간, 지역 간, 계급 간 갈등도 여전히 완화될 기미가 없다. 그러니 내년 선거 당선자들은 가장 불운한 시기에 당선증을 받는 셈이다. 당연히 새로운 리더들에게 기대하는 덕목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소승은 이 시기, 가장 크게 요구되는 덕목은 ‘조율 능력’이라고 본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느 한 축이 손해를 감수하게 돼 있는데, 이를 조정하지 못하면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탄소 제로 정책은 그동안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산업의 부담을 초래하고, 4차산업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윈-윈 하면 좋으련만 급격한 변화를 강요받는 우리의 처지는 그렇지 않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능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조율 능력’은 우선 잘 듣고,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뢰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또, 조율자는 있는 듯 없는 듯해야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논어〉에 보면 누군가의 충언을 듣고 기뻐하는 이는 공자의 제자 3천 명 중에 딱 한 명 자로(子路)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듣고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다. 최고위직일수록 더할 확률이 높다. 자고로 현명한 리더는 만민의 총명을 모아 자기의 총명으로 만든다. 아무리 한 사람이 밝다 해도 만민의 총명을 모은 것보다 더 밝을 수는 없다.
법치(法治)를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자칫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 고리타분한 고리짝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근대 민주 공화정에서 법치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규율이다. 불법을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고, 법을 잘 지키면 최소한 손해는 안 본다는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대장동 사건이 대표적이다. 십몇 년에 걸쳐 진행된 대장동 사건은 그 과정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각종 불법·탈법·편법이 횡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대가를 지금 대장동 주범들이 아닌 국민이 톡톡히 치르고 있다. 요령껏 법을 피해 가면 큰 이득을 보고 법을 잘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바보가 되는 이 세태는 분명 정도(正道)가 아니다. 나라의 발전을 막고 국민화합을 해치는 악행 중의 악행이다. 새로운 국가 리더는 이 부분에서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법가(法家)라고 불린 진나라의 재상 상앙(商鞅)의 ‘남문 말뚝’ 일화는 한 나라의 법과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준다.
불가(佛家)에서 도(道)는 ‘시공(時空)이 끊어져 욕심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현실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에도 도(道)가 필요한데, 소승은 이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도(道)가 없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치를 알아 각 분야에서 도(道)를 실천할 때 올바른 정치가 나오고 국민은 편안해지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서 어항에 넣어놓고 물을 조금씩 부어주면 물고기는 목마른 것을 적셔주는 고마움을 알지만, 강에 놓아주면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런 시대가 태평천하이고 그런 리더가 성군이다. 내년에 새로 뽑힐 리더들에게 도(道)에 기반을 둔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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