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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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2-01 00:00 조회269회 댓글0건본문
시루에서 콩나물을 뽑아내고
번쩍번쩍 빛나는 갈치의 목을 딴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두꺼비 손
뚝딱뚝딱 밥이 나오고
공책이 나오고
표준전과가 나오고
마음먹고 산 옷의 지퍼가 올라가지 않을 때
사람의 입술이 성벽처럼 완고할 때
돌을 던지고 모래를 흩뿌려 댔다
세상에 대한 유일한 저항이
내 손을 더럽히는 것이었다니
손을 잡고 싶었지만 망설였고
손을 내어줄 수 있었지만
주머니에 넣어 두는 편이
안전하다 믿었던 날
손쓸 수 없는 일도
세계엔 넘쳐났지
보증금 천에 월 삼십,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사했지만
부자가 되거나
갑자기 월급이 오르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은 되었다
더 불행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침대맡에 호랑이 그림을 올려 두고는
손이 하나뿐인 어떤 여인을
손가락이 열한 개인
또 한 여인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겨울이 무던히도 지나갔다,
지나가지 않았다
불도 켜지 않은 저녁에
뭉툭한 엄마 손이
겨울 외투를 깁고 있다
오래된 것들이 빚어내는 광채,
그게 부끄러워
돌아가던 날이 있었다고
이제 고백할 수도 있겠다
발밑이 진창일 때
더는 달아날 데가 없을 때
먼먼 우리 집 같은
빨주노초 지붕들을 올려다본다
무 뿌리 같은 겨울을 움켜잡고
생애 한 벌의 수의를 짜는
무수한 손들이
깃발처럼 빨래처럼
펄럭, 펄럭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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