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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법문

현대불교 지상백고좌(양 2024년 2월 20일) - 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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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19 09:25 조회7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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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 스님은 <원각경>의 이 구절을 읽을 때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변화할 뿐 영원한 것이 없고 그저 시간 속을 흘러가는 바람 같고 구름 같고 꿈같은 것이다. 그러니 실재는 텅 비어 있을 뿐’이라는 무상의 이치를 다시 되짚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금강경>을 압축한 것이 <반야심경>이요, <반야심경>을 압축하면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얻은 바가 없음’의 한 구절로 귀결된다”고 했다. 



가람수호도 중요한 수행법

  원행 스님은 은사 만화 스님을 도와 월정사 대웅전 중창불사에 큰 힘을 보탰다. 폐사 직전의 대전의 자광사를 중창했고, 동해 삼화사의 노사나철불을 복원했다. 원행 스님이 원주 치악산 구룡사 주지 임기 중에 대웅전이 전소하였기에 참담한 가운데 구룡사 대웅전 중창불사를 해냈다. 가람을 중창하고 수호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부처님의 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다. 


  그러면서 원행 스님은 한암 스님의 ‘승가 오칙’을 소개했다. 한암 스님의 ‘승가 오칙’은 첫째가 참선(參禪), 둘째가 염불(念佛), 셋째가 간경(看經), 넷째는 의식(儀式 종교행사), 다섯째는 수호가람(守護伽藍)이다. ‘사원의 보수와 중창은 청정불국가람을 수호하는 것이며 이것도 수행’이라는 한암 스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원행 스님은 가람 수호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도량이 건립된다는 것은 다른 역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사회의 정신적인 수행도량이 들어서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심이 넉넉해져요. 바르고 청정한 도량이 있으면 신도들이 참회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모여듭니다. 가람은 미래불교의 근원지이자 불성의 발아처입니다.” 


 

원행 스님은 중창불사를 비롯한 큰 불사를 할 때면 4분(分) 정근으로 기도결사를 하였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 장주 소임을 보면서, 대전의 자광사를 중창하면서 만일기도 수행을 하였다. 4분 정근은 하루에 4번씩 두 시간 동안 기도하는 것이다.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도량석을 한 후 2시간 동안 새벽기도를 하고, 10시에 사시기도를 한 후 2시간 기도하고, 점심공양을 마치고 2시간 기도를 하고 저녁공양을 마친 후에 2시간 기도를 하는 일과를 이어갔다. 하루 8시간씩 매일 서서 목탁을 치고 염불하고 기도를 올리는 결사는 그 자체로 고행이다. 기도로 여러 차례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기에 원행 스님은 불자들에게 기도 수행을 강조한다. “기도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면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나오는 네 가지 믿음을 소개했다.

  “불교의 근본진리를 믿어야 하고, 부처님께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 부처님의 법을 믿으면 커다란 이익이 있음을 믿어야 하고, 불교의 선지식은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수행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는 참회와 회향이 필요해요. 기도를 한다면 감흥을 느껴야 할 정도로 지극 정성으로 해야 합니다.”

스님은 정화되지 않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 기도 성취가 어렵기에 참회기도부터 먼저 올려야 함을 강조했다. 기도에 앞서 중요한 것은 행복과 고난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라고 하신다. 이 세상은 화(禍)와 복(福)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단다.  



 

“어느 날 자신에게 복이 찾아와 행복하다면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그 행복을 주위 사람과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반대로 화가 찾아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화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화가 올 때는 인내해 복을 생각하고, 복이 찾아오면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원행 스님은 “한암 스님께서는 새벽 예불을 마치고는 두 시간을 꼬박 서서 꼭 관음정근을 하셨다”면서 염불도 훌륭한 기도이자 수행임을 강조했다. 

  

원행 스님에게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월정사 재무 소임을 맡아 일하고 수행하던 중 1980년 10.27 법난 때 강제 연행돼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불교 말살을 목표로 일어난 10.27 법난으로 수많은 선지식이 다치거나 돌아가셨다. 그때 받은 고문으로 환절기가 되면 통증이 더욱 더 심해진다. 그 힘든 환란을 견디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기도뿐이다. 그러면서 10.27 불교법난이 종단사에 기록돼야 함을 강조했다. 

  스님에게 또 한 번의 큰 환란이 있었다. 1983년 월정사 분규로 원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병으로 나왔다. 이때 탄허 스님은 친필 휘호를 써주셨다.


계간불능유득주(溪澗不能流得住)

경귀대해작파도(竟歸大海作波濤)

계곡의 물은 쉼없이 흐르고 흘러

큰 바다로 돌아가 파도치리라.


탄허 스님은 멀고 먼 구법의 행로를 예견한 듯한 내용이 담긴 휘호를 내렸다. 원행 스님은 지금도 탄허 스님의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수행자로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이런 이유로 원행 스님의 새벽 탑돌이 기도는 계속된다. 



작금은 하심이 필요한 시대

  원행 스님은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학원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외전으로서 ‘생명환경과학’을 전공한 것은 탄허 스님의 영향이 크다. 

  “탄허 스님은 ‘우주와 인생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진리는 오직 <화엄경>뿐이다. 앞으로는 화엄의 시대요 생명의 시대’라고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환경과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원행 스님에 따르면 현대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보는 새로운 인본주의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으며, 현대사회가 갈망하는 참인간주의 사상은 자기회복, 인간회복이라는 것이다. 한암 스님의 불교사상과 탄허 스님의 화엄사상에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사상이 담겨있는 귀한 가르침이라는 게 원행 스님의 주장이다. 

  “기후 위기를 넘어 지금 비상사태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빙산이 녹아내리거나 사라지고 있어 ‘빙하의 장례식’이 행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46억년 전 태어난 지구는 10억년이 지나 비로소 원시 생명이 탄생했어요. 그로부터 지구의 남은 시간이 90초입니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임계점을 섭씨 1.5도로 잡았어요. 당장은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선을 넘는 순간 지구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겠지요. 생태계를 뒤흔드는 삶의 방식과 물질을 최고로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빚은 결과입니다. 욕망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 지구를, 인류를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원행 스님은 21세기 현대사회를 “말이 넘쳐나고 분노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대로 진단하며 말을 이었다. 

  “바야흐로 말의 시대가 왔어요. 이제 입 가진 이는 세상 도처에 자신의 말을 쏟아냅니다. 각종 소셜미디어는 말의 용광로가 돼버렸어요. 듣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무차별하게 쏟아내는 데 몰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내, 배려, 공감, 하심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더 상처 주고, 더 모욕하고, 더 공격하는 일종의 ‘무례(無禮)의 인플레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분노도 여기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이 필요하죠. 그것이 선(禪)이든, 염불과 기도든, 간경이든 상관없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색할 수 있는 수행을 해보세요. 그럼 스스로 변화하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원행 스님은 예리하게 사회 문제를 짚어냈고, 혜안으로 대안을 내놨다. 이는 모두 선지식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했기에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인터뷰 말미, 현대불교신문 불자들이 2024년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가르침을 청했다. 

 “저 들녘에 핀 꽃 한 송이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화엄의 세계에서 볼 때는 온 힘을 다해 꽃피우는 민들레, 들국화, 장미는 모두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화려한 꽃도 이름 없는 꽃도 모두 소중한 꽃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온 힘을 다 바쳐서 살아가는 존재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불자 여러분들도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고, 자기의 온 생명을 다 바쳐 꽃피우는 꽃들처럼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 10대제자 중 다문제일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로서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해 이를 후세에 전했다. 원행 스님도 한암·탄허·만화 스님 등 오대산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듣고, 실천하고 수행했으며, 그 가르침들을 글과 법문을 통해 전하고 있다. 불교라는 꺼지지 않는 정법의 등불은 이처럼 이어지고 있다. 

  귀한 법문을 되새기며 황화당을 나섰다. 눈보라는 더욱 거세졌고, 도량에 쌓인 눈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선지식의 법문으로 눈보라 치는 세상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문윤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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