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 지상백고좌(양 2024년 2월 20일) - 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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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19 09:09 조회779회 댓글0건본문
지상백고좌- 조계종 원로의원 자광 원행 대종사
폭설이다. 차창 밖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하얀 풍경만이 펼쳐진다. 월정사를 품은 오대산이 그려내는 설경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깊이 침잠하게 한다. 신라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 성지를 찾아 7년이란 긴 세월을 주유한 끝에 낙점한 오대산.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있어 1만 보살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하는 성산(聖山)이다.
속진의 세계에서 성(聖)의 세계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적광전과 동별당 서별당을 비롯한 전각들이 설법을 들려주는 듯하다.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 주석하며 1600년의 역사를 가진 월정사에 ‘화엄성지’라는 명성을 더했다.
월정사 선덕이자 조계종 원로의원인 자광 원행 대종사를 친견했다. 인터뷰는 경내 황화당에서 진행됐다. 원행 스님은 그전에 월정사를 온 적이 있느냐고 물으신다. 여러 번 왔지만, 눈 오는 날은 처음 온 것이라 답하며 스님의 근황을 여쭈었다.
세수 팔십이 넘었지만 원행 스님은 지금도 날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경내 팔각구층석탑을 탑돌이한다. 어른스님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지구가 온전하기를, 사람들이 평화롭기를 기원하신단다.
“이젠 좀 편하게 지내셔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여쭈니, 원행 스님은 “수행자는 일상의 질서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현답을 내놓았다.
“진정한 자기를 찾는 일은 이렇듯 사소한 생활규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력이 지극해지면 같은 시대 나아가서는 미래 인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사소한 개인의 육바라밀이 지구촌 사람들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에게 회향되는 자비로운 주문이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평생 화두 “멍청이가 되어라”
원행 스님은 만화 스님을 은사로 탄허 스님을 법사로 수계 득도했다. 원행 스님은 에세이집 <월정사 멍청이>를 출간했고, 곧잘 자신을 ‘월정사 멍청이’라고 부른다. 그 연유는 스님의 출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행 스님은 20대에 염불과 독경소리에 이끌려 출가를 결심했다. 오대산에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라는 고승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서울에서 걸어서 월정사에 도착했다. 크게 반겨주는 사람도 없이 일주일이 흘렀고, 기다리던 큰스님의 부름이 있었다. 이때부터 월정사에서 행자생활이 시작되었다. 수계식을 갖고 불명을 받았다.
“탄허 큰스님께서 ‘<화엄경>에 나오는 십지명(十地名) 보살 가운데 칠지 보살인 원행지가 있다. 너는 원행(遠行)이라 해라. 그리고 멍청이가 되라’고 하면서 정식으로 법명을 주셨어요. 그때는 난 똑똑하고 영리한데 왜 멍청이가 되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품었지만, 평생의 좌우명으로,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원행 스님은 행자시절부터 별좌·공양주·원주 10년에, 재무 10년, 총무 10년, 부주지 12년을 했으니 오대산 월정사 변화를 모두 확인한 산증인이다. 탄허 스님과 만화 스님의 일상 그대로가 큰 가르침이 되었고, 지금도 어떤 일에 부딪치면 어른스님들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실까 생각하게 된다.
“월정사에 출가해 보니 6.25 전란 때 아군의 방화로 불타버린 대웅전을 중창하는 불사가 한창이었어요. 만화 스님은 13살에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한암 대선사의 회상에 출가하셨지요. 6.25전쟁 때도 피난을 가지 않고 끝까지 한암 스님을 시봉하신 효상좌입니다. 10.27법난으로 옥고를 겪었지만,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으니 인욕보살입니다. 하지만 상좌들에게는 참으로 엄격하신 분이었지요.”
한암·탄허·만화 스님의 가르침
월정사의 법통은 한암 스님, 탄허 스님, 만화 스님으로 이어진다. 세 선지식의 법통을 이어받아 수행정진한 원행 스님은 <성인(聖人) 한암 대종사> <탄허 대선사 시봉 이야기> <만화 희찬 스님 시봉 이야기>를 출간했다. 특히 한암 대선사는 일제 강점기를 전후한 최고의 선승이자, 시대의 사표로 종정에 4차례나 추대된 위대한 선지식이시다. 현대 한국불교의 기틀을 확립하신 시대의 등불이었음을 <성인 한암 대종사>에 오롯이 담았다. <탄허 대선사 시봉 이야기>에는 탄허 스님의 <화엄경>을 비롯한 역경(譯經) 불사와 유불선의 사상에 정통한 최고의 학승으로 강의로 이름을 떨친 이야기가 담겨있다. 큰스님들의 수행과 법문 그리고 큰스님들의 서릿발같이 지켜온 일상 속 계율도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과 수행이 다르지 않음을 깨우칠 수 있게 된다.
행자 시절 잠이 많아서 고생했던 원행 스님은 새벽잠이 없는 어른들이 존경스럽기만 했다. 종정을 네 번이나 역임하신 한암 스님은 새벽 3시에 예불하고, 선방에서 <금강경>을 독송하시고, 사시예불에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대예참을 직접 다했다.
탄허 스님은 밤 9시면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 밤 12시나 새벽 1시에 첫잠을 깨면 다시 눕지 않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만화 스님은 잠을 주무시는지 안 주무시는지 밤새도록 앉아서 참선을 했다. 탄허 스님은 “첫잠에서 깨면 다시 눕지 마라. 첫잠을 깰 때가 가장 기운이 맑을 때니 다시 잠자리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원행 스님은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으며, 1년의 계획은 봄날에 있으며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있다”면서 새벽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만화 스님은 예불을 마치고 나서는 영단을 향해 ‘무상게’를 꼭 독경해 줬다. 아침저녁으로 예불이 끝나면 대중들이 참선하고 경전을 읽도록 했다. 대중 한 사람이 나와서 한 대목을 읽으면 그 다음날은 또 다른 사람이 이어서 독송했다. 그 덕분에 <금강경> <원각경> <능엄경> <유마경> 등의 경전공부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원각경>의 ‘보안보살장’을 은사 만화 스님께서 아침저녁으로 독송했기에 제자인 원행 스님도 아침저녁으로 <원각경>을 독송하고 있다.
선남자여, 중생들은 환인 몸뚱이가 멸하므로 환인 마음도 멸하고, 환인 마음이 멸하므로 환인 경계도 멸하고, 환인 경계가 멸하므로 환의 멸도 멸하고, 환의 멸이 멸하므로 환 아닌 것은 멸하지 않나니, 이를 테면 거울에 때가 없어지면 광명이 나타나는 것과 같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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