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그리고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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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3-26 15:18 조회2,248회 댓글0건본문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1898)은
괴질의 유행 경로를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침을 아무데나 뱉지 말고, 코나 침이 땅에 떨어졌거든 닦아 없애라,
먹던 밥을 새 밥에 섞지 말고 먹던 국을 새 국에 섞지 말라,(․․․)
이리하면 연달아 감염되지 않을 것이다.”
해월이 할동하던 시기에 계룡산 동학사에는
경허(1849~1912)라는 걸출한 승려가 나타나 이름을 떨쳤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출가한 경허는
일찍 경전에 달통해 동학사 강백이 됐다.
수많은 승려와 신도가
경허의 〈금강경〉강론을 들으려 몰려들었다.
서른한살 때 경허는 처음으로 절간을 나와 속세의 땅을 밟았다.
천안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다.
경허는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집마다 문을 두드렸으나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문을 열어주는 집이 있었는데,
노인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는 전체가 호열자 귀신에 씌어 집집이 시체요, 빨리 도망가시오.”
도를 닦아 생사를 초탈했다고 자부하던 젊은 승려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자 혼비백산해 줄행랑을 쳤다.
경허는 이 참담한 체험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은 경허는
나병에 걸려 손과 발이 뭉개지고 코가 문드러진 여인을
제 방에 들여 전심으로 돌보는 무애의 자비행을 실천했다.
해월은 선각자의 통찰력으로 조선 민중을 지켰고,
역병을 통해 대각에 이른 경허는 조선 불교를 새로 일으켜 세웠다.
전염병의 집단 숙주가 된 오늘
한국 종교와 종교인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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