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6-01 08:53 조회1,219회 댓글0건본문
고종의 손자 이우(1912~1945) 공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이던 1945년 7월
일본 육군 중좌(중령)로
히로시마 제2총군에 배속됐다.
그해 8월6일 아침 영내로 출근하던 중
그의 머리 위에서
굉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였다.
그는 목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숨졌다.
이우 공은 미국의 핵 공격으로 숨진
조선인 수만 명 중 한 명이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조선인이 많았다.
전시동원체제하에 징용된
군인이나 군속,
강제 연행되거나 이주한 노무자들이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가
약 7만명(히로시마 5만명, 나가사키 2만명)에 이르고
그중 1945년 말까지
약 4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인 사망자 14만명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한국인 생존자와 유족과
평화운동 시민들의 노력 끝에
1970년 4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졌다.
위령비가 공원 내로 옮겨진 것은 1999년 7월이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그해 8월6일 히로시마를 찾았다가
위령비 이전 소식을 듣고
즉석에서 헌화를 결정했다.
2023년 05월 19일 ~ 21일은
히로시마 7개국(G7)정상회의 때
일본총리 기시다와 윤석열 대통령이
위령비를 참배 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