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원행스님> 하루를 돌아보며

하루를 돌아보며

코로나19 와 리원량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2-12 10:35 조회1,772회 댓글0건

본문

 


 


“살아 있는 우리는 죽은 자들일지니,

쓰디쓴 죽음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중세의 수도사 노트케르 발불루스의 말처럼 

죽음은 살아 있는 자의 몫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는 것처럼 생명에도 끝이 있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소식들은 

죽음이 삶의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이유다.


죽음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죽겠다는 ‘웰다잉’ 운동이다. 


영화 <버킷리스트>가 화제를 모으고, 

영국 BBC방송은 삶의 마무리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선보였다. 


2018년 국내에서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이 도입됐다. 


시행 2년 만에 환자 8만여명이 연명치료 중단에 동참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관습은 서양보다 동양이 더 강했다. 


1600년 전 도연명은 자신의 죽음을 소재로 3편의 시를 지었다.


 ‘혼백은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시신은 빈 관 속에 놓여지네/ 

재롱둥이 아이는 아비 찾으며 울고/ 친구는 나를 어루만지네.’

(‘擬挽歌辭·의만가사’ 제1수) 


이후 중국과 조선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만시(自挽詩), 자찬묘지명, 자제문(自祭文) 등이 잇따라 쓰였다. 


다산 정약용이 남긴 자찬묘지명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대 임준철 교수가 밝혀낸 조선시대의 자만시는 228수나 된다. 


중국 의사에 대한 추모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는데, 저는 갑니다. 


제가 떠날 때 눈앞은 매우 캄캄했고 아무도 저를 배웅해주지 않았습니다. 


단지 흰 꽃 몇송이만 제 앞에 놓여 있었지요. (하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을 처음 폭로했다가 

지난 7일 숨진 중국 의사 리원량(李文亮)을 기리는 ‘저는 갑니다. 


훈계서 한 장 들고서’라는 제목의 글이다. 


필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양 전통의 ‘자제문’ 형식을 띤 글은 

리원량의 죽음, 공안 당국의 협박, 감염증 확산, 우한시 봉쇄 등 

중국의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리원량 제문’은 ‘신종 코로나 영웅’에 대한 추도문이면서 

감염병 은폐에 급급한 중국 당국에 대한 고발장이다. 


리원량의 왕생극락을 기원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