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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돌아보며

연등회의 포용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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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28 10:56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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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연등회(燃燈會)의 기록은

정월 15,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관리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삼국사기> 경문왕 6(866)의 기사가 처음이다.

통일신라 때 이미 연등의 풍습이 있었다는 얘기다.

고려 때는 태조 왕건이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 개최를

훈요십조에 못 박으면서

매년 열리는 국가 행사로 승격됐다.

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서긍이

<고려도경>

“2월 보름에 여러 사찰에서 등불을 켜는데,

매우 성대하고 화려해 왕이 비빈들과 함께 가서 구경했으며

거리는 백성들로 가득 찼다고 적은 것에서

그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연등은 본래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의식이다.

어두운 세계에 등불이 된 부처님처럼

무지와 번뇌를 떨쳐내자는 뜻으로

사람들이 석가탄신일에 등을 밝힌 게 시작이다.

인도의 연등 설화 가운데

가난한 여인 난타가 정성스럽게 바친 등이

가장 오래도록 밝게 빛났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꽤 알려져 있다.

<현우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연등의 정신이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는

평등심에서 시작됐음을 말해 준다.

 

조선에서도 연등회는

민관이 함께 즐기는 중요한 축제였다.

억불숭유책으로

불교를 배척하면서도 왕실과 민간에 뿌리내린

연등회만은 어찌하지 못했다.

초파일만 되면 궁궐에 수만개의 등불이 밝혀졌고,

남산과 종로 등에는 관등놀이를 위한 연등이 내걸렸다.

조선 중기의 문인 택당 이식은

종로의 연등축제를 한양8경 가운데 하나로 꼽으면서

거리에 내걸린 만개의 등이 대낮같이 환하다고 시로 읊었다.

불교는 쇠퇴했지만

연등의 풍속은 1000년이 넘도록 이어진 것이다.

한국의 연등회가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2001년 종묘제례악 이후

21번째로 지정된 세계유산이다.

유네스코는

연등회가 시대를 초월한

포용성, 국적·인종·종교·장애의 경계를 뛰어넘은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줬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우리 전통문화의 개방성·평등성을

인류 자산으로 평가한 것이다.

오래된 문화라고 고루하고 편협하다고 치부할 게 아니다.

향후 연등회는

제등행렬·관불의식 등 행사의 화려함보다

연등의 근본정신을 살려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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