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초심(初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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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 스님 작성일19-11-20 09:19 조회3,432회 댓글0건본문
부처님 말씀에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變正覺)은
처음 발심할 때 정각(正覺)을 이룬다는 뜻이다.
촛불은 자기 몸을 태워서
세상을 밝히는 것 외에는 다른 뜻이 없다.
이 촛불을 끄거나,가리거나,변질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며
이뜻을 오해하거나,깨닫지 못하면
자신을 기만하거나 역사와 철학이 없어
세상이 더욱 어두어져서 캄캄한 어둠속에서 해매다가
깊은 웅덩이나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혼돈의 동북아 질서속에서 작금의 동북아시아는
신호등없는 십자로에 차들이 뒤엉켜 붐비는 형국으로
갑오년(2014년)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은 진행중이며
역사는 모방이 아니고 창조인 것이며
철학을 가지고 역사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 정치와는 달리 국제정치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약소국의 운명이 좌우되는데 엄연한 현실이며
우주의 원리로 보면
강력한 세력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세계는 독일의 것이 되었을 것이고
독일은 세계 제1차 제2차 대전에서 패배했다.
또한 우리 육신에서 제일강한 것이 뼈인것이며
그 강한 치아는 50년 60년이 못되어 의치를 해야하는데 비해
제일 부드러운 혀는 우리와 백년을 함께한다.
3년전 촛불로 시작된 우리모두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평화의 평화를 위한
번영의 번영을 위한 국가 지도자는
허리띠와 신발 끈을 다시 조여야 한다,
동북아시아 주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100년전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다시 각인하고 결심하여야 한다.
약자와 서민의 편에서 어판시장에서 새벽 장바구니에서
청소차와 환경미화원 등의 어깨에서
실업자의 고민속에서 국민의 삶을 살펴야 한다.
국민정신이 영험(靈驗)이 있고
감응(感應)이 있는 울림이 있는 정치가 있어야 한다.
일회성이나 이벤트적인 보여주기 식이 아닌 추측만 무성한 것보다
국민의 피부에 와닫는 작은것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3년전 촛불민의가 한국사회 전반에 제대로 반영되는지
사회개혁과 불평등,정의로운 사회,노동개혁 청년들이 겪는 구조문제
삶의 다양성 존중과 불평등 해소 등이
어디에서 꼬였으며 맺혀 있는지
또 국민의
불평등해소,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인상,검찰개혁,비정규직정책등
촛불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이 일시적으로 단번에 실현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지도자는 국민의 믿음과 신망을 얻어야 한다
시민들이야 묵묵히 일상에서
촛불의 과제를 일구어 공론장을 일으키고 끌어가는데
책임있게 나서고 주권을 표시하여
맹목적 무비판적 추종이 아닌
합리적 대안의 비판과 참여의 촛불을 밝히는 것이다
지난 3년 쉼 없이 달려왔지만
집권 초기의 촛불정부의 위용을 이어가는지?
문명 보다는 야만의 힘이 우세한 세계가 통상인 것을 알고 있다
남 탓하기 전에 내 탓이요 라는 허심탄회하게 정리하고
국민 앞에 소통해야 한다.
탄허(呑虛)조실스님은
21세기는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고
세계를 리드하는 국민이 될 것이라 예언하시며
세계의 화두가 남북분단의 벽인 통일이라고 예언하였으며
역학적인 지정학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역(易)이란 음양오행의 변화하는 진리로서
한국의 광화문 촛불혁명과 중국 홍콩의 우산혁명은 하나로서
1894년 동학농민의 갑오경장 사건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며 역사를 잊은 민족은 소멸되는 것이다.
2014년(갑오년)부터 시작된
한국인구 5천만명의 4분의 1인 1700만명의 촛불이
광화문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쳤으며
중국 홍콩인구 800만의 4분의 1인 170만의 우산이
빅토리아 공원에서 「홍콩은 홍콩이다」라고 외치는
비폭력 무저항의 위대한 「시민의 숲길행진」은
촛불과 우산은 동시에 시작되어 하나인 것이다
우리 국민은 다시 촛불의 초심으로 돌아 가야한다
세상만사 세옹지마 같아서
역경에서 서러워 할 것도 순경속에서 좋아할 것도 없으며
모든 싹이 영멸이 아니고 성장의 과정이며
발전과 진화의 과정으로 자연의 법칙은 순환하는 것이다.
우리 남북한 다같이
8천만 민족이 촛불정신 계승과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평화정신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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