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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돌아보며

창엽문(蒼葉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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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8-23 11:42 조회2,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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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문재인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과 부동산 관계로

국정이 난맥상을 이루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조시대 이성계가

무학대사로부터 개성에서 천도를 할 즈음에

한양과 신도안을 두고

읍지로 무학대사의 말 데로 한양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지금의 서울은 옛날 한양(漢陽)의 이름이었다.

한양이란 한강의 양지바른 강북을 말하며

삼각산하 청운동, 효자동, 적선동, 가회동등의 강북을 말하는 것이다.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후

지금 종로2가에 있는 이씨 왕조의 종조의 문을 세우는데

작명을 무학대사에게 청해,

이성계는 신라의 천년처럼

이씨왕조의 천년을 계획하고 실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학대사는

성균관 유생들의 반대와

이씨왕조 천년의 도읍지로서는 불가능 함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으며

당시 불교의 피폐함과 유생들의 반대로

이씨조선 오백년 동안

숭유억불 정책을 수립하여 왔던 것이다.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사대성문 안에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큰 절을 짓기로 약속하였으나

성균관 유생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왕자의 난 등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 할 것을

무학대사는 이미 알았으며

한양은 불교가 번창 할 장소가 아니므로

한양성 30리 밖에 불암산 불암리에 불암사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미래를 보고 무학대사는

이씨조선 종조의 문을

지금 현재 종로2가에 있는 종묘를

창엽문(蒼葉門)이라 작명하여 주었다.

창엽문의란 창이란 글자를 파자하면 28군왕이란 뜻이다.

엽이란 잎파리 엽자로

이씨조선 가지가 28군왕으로 막을 내리는 뜻이다.

이와같이 한반도의 역사는

역사적이나 지정학적으로 역사가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1988~1993년대 노태우 대통령 당시와

2003~2008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천도하자는 의견이 분분하여

청남대를 새로 짓고 대전 둔산으로 종합청사를 옮기고

과천청사가 이전하였고

세종시가 새로 건설이 되고

이러한 역사속에서 2020년 경자년을 맞이 하였다.

탄허 대종사 말씀에 의하면

계룡산 안의 신도안 은

지금 3군 본부가 이전한 자리로

원래 그 곳에 청와대가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으며

금강을 끼고 있는 계룡산은

삼각산하 한양과 다르게 부처님의 도량으로써

계룡산 밖 30여리 밖에

공주시 유구면 공암리에 공자 바위가 있어

유생들이 살아갈 도량으로 점지하여

한강의 한양과 다른 지번과 지상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반도 역사의 내력과 내용을 알고

그 시대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향을 보고 연구하고

행정도시를 옮기고 부동산 정책을 수립 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2020년 경자년은

코로나19등과 쥐띠의 해로써

육십갑자의 시작 해로서

정책과 국책 수립에 자문과 조언을 받고 실행하여야 할 것이며

김영삼 정부시절 예금 실명법 실행과

조선총독부 중앙청 철거와 성수대교 붕괴등으로 인하여

빈승등 5~6명에게 청와대로 초청하여

기독교 장로로서의 신앙에 대한 고충과

청와대 뒷산에 있는 경주 남산 미남불에 대하여 설명하고

한양 도읍지에 대한 탄허스님의 말씀을 전한 바가 있다.

그 이후 청와대에 불자회 즉 청불회가 발족하게 되었고 조언한 바 있다.

이와같이 한양이 수도로서의 명운이 끝나감을

역사적으로 인지여야 할 것이다.

 

 

원행스님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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