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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돌아보며

1차대전 후 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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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8-11-25 07:31 조회3,3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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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불가피했던 것은 아니다.

피할 기회는 많았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저격당했을 때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의 요구 조건을 모두 수용했다.

이 때문에 독일황제 카이저 빌헬름2세조차

전쟁의 이유는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는 베오그라드를 포격했다.

당시 유럽 각국의 왕실은 혈연으로 얽혀 있었다.

바버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

19105월 영국 에드워드7세 장례식 장면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잘 드러냈다.

장례식에 참석한 빌헬름2세는

이곳이 나의 고향이고, 내가 이 왕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에드워드7세는 그의 외삼촌이다.

스페인왕은 에드워드7세의 조카사위, 덴마크국왕은 처형, 노르웨이국왕은 처조카다.

러시아의 니콜라이2세는 조카, 루마니아왕비는 조카딸이고 그리스 왕과도 친인척 관계다.

1차 대전은 가족 간 살육전이었다.

그때 유럽에는 국가를 뛰어넘는 형제애로

무장한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국가 간 경제적 상호의존도 심화되었다.

적국에 투자하고 적국의 재산을 소유한 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기어코 전쟁을 했다.

191481일 주러 독일대사는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선전포고를 전달했다.

장관이 천벌이 내릴 것이오하자 대사는 울음을 터뜨렸고

장관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다 포옹을 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작가들이 나섰다.

독일의 토마스만은

최고의 민족이 최고의 권력을 갖고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의 조지버나드쇼는

백해무익한 괴물 군국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서로 참호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죽을줄 알면서도 `돌격 앞으로`하는 병사들의 생존기간이

5일이라는 말이 나돌았던 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다.

세계지도자들이 19181111일 종전을 기념해 파리에 모인다.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라고 했던 HG웰스의 기대와 달리

세계는 또 한번의 대전을 치렀고,

한반도에서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했다.

두 번의 대전을 치른 유럽이 평화를 자축하는데

65년이 지나 종전선언도 못한 한국인은 언제 그런 호사를 누릴까?

설마 100년째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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